(구로 육아 종합센터 "나의 성장 일기" 이벤트 공모글에서 대상받은 글)
사람의 인연은 살아가는 방법만큼이나 다양하다. 무엇보다 가장 끈끈한 인연은 하나님, 조상님, 아니 삼신할머니가 허락해야만 가능한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이 된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을 천륜이라 부른다. 거기에 손주와의 인연은 내 자식과 맺어진 또 다른 특별한 인연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 귀한 인연으로 맺어진 손주들을 돌보는 일이 요즘 나의 본 업무다.
손자는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생기면 양말도 벗어 던지고 신발도 저만치 벗어 던지며 떼쓰고 우는 통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당황한다. 놀이터에서 육아 동기인 젊은 엄마한테 손자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 엄마도 요즘 딸이 떼쓰고 울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16개월에서 30개월까지가 일 춘기이고 아이들의 발달 단계라고 말해서 안심이 되었다. 사실 나는 일 춘기라는 용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이런 모습도 성장하는 단계라니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요즘 분노 조절을 못 해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많다.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순탄하게 커가기를 바란다.
유튜브에 두 살 떼쓰는 아이라는 키워드를 썼더니 여러 개의 동영상이 떴다. 그중에 내 상황에 맞는 것을 찾았다. 동영상을 여러 번 보고 이유도 알게 되고 대처 방법도 알았다. 그 동영상을 딸과 사위와도 공유했다. 그런 것이 발달 단계라면 이유가 있겠지? 두 돌 전후 16개월에서 30개월 사이가 아이들의 자아가 발달하는 시기라고 한다. 인지와 언어 발달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소통이 안 되어 시도 때도 없이 떼쓰고 우는 시기가 일 춘기라고 한다. 소통 수단의 첫째는 말인데 손자도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면 저렇게 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안쓰러웠다.
어느 날 하도 떼쓰고 울어서 위로하기 위해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했다.
“유준아 어디로 갈까?”
물었더니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손자는 말만 못 하지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손자가 가리키는 대로 쭉 따라가 봤다. 상당히 먼 곳으로 엄마나 아빠하고 함께 와 봤을 것 같은 쇼핑센터 옆에 작은 놀이기구 타는 곳이었다. 내 마음은 손자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싶었다. 하늘의 별이라도 달이라도 따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손자가 행복하게 노는 모습도 간절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손녀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춰야 했다. 일단 그 세계에 들어가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되돌아오고 말았다. 손자가 서럽게 울며 발버둥 치는데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체하며 계속 동영상에서 봤던 육아 코칭대로 따라 말했다.
“아무리 떼쓰고 울어도 소용없어요.” 낮고 느린 말투로 계속 되풀이했다.
나는 손자가 떼쓰고 울 때 번쩍 들어 안아주지 않는다. 손주를 들어 올리다가 허리가 삐끗하거나 무릎에 무리가 생겨 손주를 못 보게 되면 더 큰 낭패다. 나는 건강관리도 하면서 오랫동안 손주를 돌봐주고 싶다. 그래서 땅바닥에 드러누운 손자 옆에 나도 같이 주저앉는다.
“아무리 떼쓰고 울어도 소용없어요.”
낮고 느린 말투로 계속 되풀이하며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다. 한참 지나 진정된 기미가 보이면 “유준아, 일어날까?” 그러면 고개를 끄덕이고 양말과 신발을 신고 다시 논다. 그렇게 여러 번 말했더니 떼쓰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런 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구나!
알아야만 아이도 행복하게 커가는 데 도움이 되겠네.”
생각하며 젊은 엄마들과 계속 소통해야겠다.
손자가 일 춘기로 힘들어할 때 어린이집 공지 사항에 육아종합센터에서 클로버 부모 교육이 있다는 안내가 떴다. 나는 선생님께 조부모도 교육받을 수 있냐고 물었고 이틀간 교육을 받았다. 긍정심리학의 기초인 에니어그램을 통해 소중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강사님 강연을 듣는데 신기루처럼 손자가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 기대가 컸다. 부모나 양육자인 할머니와 손주들의 성격을 알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교육이었다. 에니어그램 성격검사를 통해 부모 대신 양육하는 할머니에게도 자신의 강점과 긍정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인간적 가치와 삶을 되돌아보고 조부모로서의 길도 알게 되고 힘도 얻게 되었다. 교육 중 특히 나를 토닥토닥 안아주며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가족에게도 소중한 사람.”
이라고 강조하는 위로의 시간이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보다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니 가슴이 뭉클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 할머니는 뭔가 의미 있는 큰일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어. 존재감이 높은 부모는 자식을 존중하고 그런 부모와 함께 자란 자녀는 존경받기 쉽지. 앞으론 손주들과 말하는 태도도 긍정 대화법으로 바꿔야겠다. 에니어그램 성격 검사를 통해 나는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나는 손주들을 돌볼 때도 안정적인 계획을 세우고 조심성 있게 대하는 성격이다. 손주들의 발달단계나 심리 상태를 잘 모르면 육아 동지나 교육을 통해 배워 가며 손주들도 할머니도 건강하고 행복해야한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생명줄인데 부모 역할을 대신하는 할머니도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알찬 교육이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대신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커갈 수도 있다. 그런 아이에겐 좋은 추억도 나쁜 추억도 그들이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
딸이 퇴근하면 여섯 살 손녀가 먼저 뛰어가 엄마를 끌어안는다. 그 순간 두 살 손자는 할머니 품으로 격렬하게 뛰어든다. 그럴 땐 내가 손자에게 믿을만한 양육자구나! 하는 생각에 한없이 기쁘다. 한편 손자는 첫째인 누나 자리를 도저히 넘볼 수 없다고 생각할까 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커서도 자기주장을 적극적으로 못 하고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고단할 듯하다. 첫째도 둘째도 부모 특히 어릴 땐 온 우주라고 생각하는 엄마로부터 충분히 사랑받고 자라야 한다. 정서적 허기보다는 충족감을 느끼며 커 갔으면 하는 것이 할머니의 바람이다.
할머니가 하루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
“유준아, 할머니 가시는데 인사해야지!”
하면 할머니 품에 푹 안기는 손자만의 루틴이 있다. 격렬하게 뛰어와 안길 때면 손자의 따뜻한 품과 심장 소리까지 전달된다. 할머니와 헤어지는 의식을 여러 번 반복해 지쳐서 소파에 누워있다가도 딸이
“유준아, 할머니 가시는데 인사해야지!”
하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할머니를 안아주러 종종걸음쳐 온다. 그런 손자의 모습은 그날의 피로와 힘듦이 다 사그라지게 하고 더 큰 에너지를 충전 받고 힘내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손주들 재롱은 한없이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또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내 삶의 원동력이 된다. 이런 달콤하고 행복한 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