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순, 중부 지방에 첫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첫눈이라기에 소리 없이 살며시 왔다가는 손님이겠거니 생각했다. 늘 첫눈에 대한 경계심은 별로 없는 터라 그저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이었다. 딸이 퇴근하고 손주들의 환대를 받으며 나도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 눈이 사선으로 강하게 내려 눈앞이 성가셨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무거운 눈이 머리에 주저앉아 온몸이 으스스 떨려왔다. 정류장까지 가는데도 습기 많은 눈 때문에 머리가 젖어서 스카프로 머리를 싸매니 그나마 조금 나았다.
여의도 환승센터에서 출발하는 11-2번 버스가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버스정류장 하나를 막 지나가는데 앞차가 눈길 위에서 비틀거리며 좌우로 휘청거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버스의 맨 앞쪽에 서 있던 나는 그 아슬아슬한 장면을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앞차의 미끄러짐과 다른 차들이 위협적으로 들이밀어 오는 듯한 긴장감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 기사님, 무사고 운전하게 도와주세요. 모든 승객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신도림에서 광명시 철산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 두 개를 지나 세 번째 버스 정류장에 곧 도착할 것이다. 고척 스카이돔을 지나서 차가 멈춰 섰다. 정류장 두 개를 오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사람은 너무 많아 자리에 앉기는커녕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오래 서 있다 보니, 다리는 점점 저리고 그냥 아무 데나 주저앉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춥다는 날씨 예보에 옷을 겹겹이 껴입고, 버스 안은 히터까지 틀어져 있으니, 숨이 턱턱 막히는 듯 답답했다. 견디다 못해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서 창문을 조금 열었지만, 차가 꼼짝도 하지 않아 찬바람 한줄기 들어오지 않았다. 이러다간 공황이 오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차들이 멈춘 채 장시간 기다리는 상황에 지쳤다. 아무리 목을 빼고 앞을 바라봐도 차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사님 승차하는 앞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가슴이 답답하고 울렁거려서요.” 기사님은 흔쾌히 열어주셨다. 마침, 바깥쪽 내리막길에 한 사람이 눈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기사님, 저쪽으로 가면 뭐가 나와요?” “구일역이요.” 구일역은 인천방향 지하철역 아닌가 너무 반가웠다.
그렇지만 선뜻 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밤 8시, 그것도 처음 가보는 한적하고 낯선 길! 구일역이 어디쯤 있는지 확실히 모르는 새로운 길이었다. 게다가 천둥번개까지 치며, 눈은 사정없이 내렸다. 우리 나이에 가장 무서운 것은 낙상이다. 눈길에 넘어질까 봐, 그리고 밤 8시라 깜깜해서 모르는 길을 선뜻 나설 수 없어 아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때 내 뒤에 있던 한 젊은 아가씨가 말했다. “아저씨, 내려서 걸어갈래요.” “아가씨, 저도 같이 가요.” 우리 뒤로 몇 명이 더 내렸다. “아가씨, 제가 좀 잡아도 될까요? 내리막길이고 눈길이라 무서워요.” 그녀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같은 위험한 상황에 길을 걸어가는데 그녀 손의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졌다. 그녀도 다행히 같은 방향 천안행 지하철을 타야 한단다. “아가씨, 같이 내려서 지하철역 가자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어르신이 문 열어달라고 해주셔서 고마워요. 만약 문을 열지 않았으면, 내릴 생각을 못 했을 거예요.” 그녀를 쫓아서 구일역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독산역에서 내리고 나는 철산역까지 가면 된다. 그날따라 열차가 더디게 왔지만, 함께 탈 기차역으로 향하는 마음에 걱정이 사라졌다. “구로역까지 가셔서 1호선으로 환승하고, 가산디지털 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시고 철산역에 가시면 돼요. 저는 독산역에서 내려 25분을 걸어가야 해요.” 그때 또 다른 여자가 물었다. “구로역 가려면 어디서 타요?” “우리도 지금 구로역으로 가는 거예요. 같이 갑시다.” 그분은 우리 동네 철산에 산단다. 의지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서로 의지가 되고 마음이 하나 된 느낌, 동지가 한 명 더 생겨 더욱 안정감이 들었다.
전혀 모르는 세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집으로 가는 길, 아가씨는 마지막 인사까지 다정하게 건넸다. “빙판길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철산에 사는 분이 말했다. “저는 버스로만 다녀서 지하철 근처 지리는 잘 몰라요.” “이 지역은 내 구역이니, 내가 잘 알려줄 수 있어요.” 그분한테 도움 될 만한 일이 있어서 기뻤다. 그녀도 열 살짜리 딸아이가 혼자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폭설로 아직 제설 작업이 안 된 도로는 빙판길이었고, 여기저기서 넘어지는 소리에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애기 엄마, 나 좀 미끄러우니까 잡고 가도 될까요?” “여기 꼭 붙드세요.” 하며 팔을 내준다. 그분도 딸 생각에 마음이 급할 텐데도 우리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갔다. 전혀 모르는 세 사람의 조합이 이렇게 의지가 되다니!
오늘 수도권 지역에 예고보다 훨씬 많은 눈이 내려서 시민들의 발이 묶여버린 것이다. 앞에서 차 사고가 났다고 했지만, 이유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에 전철을 타러 갔다. 보통 신도림에서 철산까지 버스로 30분 거리지만, 2시간 걸려서 집에 왔다. 남편이 밥상을 차리며 같이 먹자고 했다. 그런데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집에 도착하니 몸과 마음이 풀려서 밥 먹기는커녕 실오라기 하나 들 기운도 없었다. 일단 따뜻한 방바닥으로 기어들어 가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그다음 날 뉴스에서 보도했다. “12월 4일 수도권에서 한두 시간 만에 최고 6cm 이상의 ‘게릴라성 폭설’이 쏟아졌다. 이는 올여름 폭우처럼 ‘좁고 긴’ 구름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해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1도가량 높아 많은 양의 수증기가 한반도를 덮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북서쪽에서 영하 35도 이하의 찬 공기가 내려와 강하게 충돌했다. 해수면 온도가 높으면 수증기를 밀어 올리는 힘이 강해지고, 강수량에도 영향을 준다.”
짧은 시간에 게릴라성 폭설이 내렸는데 퇴근 시간까지 맞물렸다. 온 도로가 마비 상태로 몇 중 추돌의 교통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런 날은 집에만 있으면 좋으련만…. 직장이나 나처럼 손주를 돌보러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사람한테는 이런 폭설이나 장마 같은 어려움을 자주 만난다. 그러고 보니 작년 첫눈에도 된통 당했던 기억이 있는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이번 첫눈에도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실 딸 집에서 잠을 자지 않은 이상 별다른 대비 방법은 없다. 어떻게든 식구들이 기다리는 내 집으로 가야 몸도 마음도 편하다.
참으로 뜻밖이었다. 예기치 않은 첫눈, 아니 폭설에 제대로 당했다. 하지만 우리처럼 버스에 갇히지도, 또는 자기 차 안에 꼼짝 못 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날의 첫눈이 굉장히 이색적이고 낭만적이었나 보다. 어떤 카톡 창에는 <이 숙의 눈이 내리네.>라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여느 때 같았으면 나도 덩달아 들떠서 동영상을 틀고 노래를 따라 불렀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첫눈을 맞으며 시 한 편을 써서 올렸다. 올해 처음 맞는 첫눈의 반가움에 손주들도 엄마 손잡고 놀이터에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실컷 놀았다고 한다.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첫눈을 맞이하는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눈 올 때나 비 올 때 꼭 지하철을 타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이 접근성이 좋아서 몸이 먼저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 여간해서, 꼭 필요한 때를 제외하고는 지하철을 타러 가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낯선 사람 셋이 추위와 불안을 함께 견디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마음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이 더없이 고마웠다. 폭설 속에서 맞은 첫눈은 고단했지만, 그 속에서 감사할 이유도 내 마음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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