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Apr 05. 2023

손녀가 외갓집에 오는 이유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렸을 때 부모님 대신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컸던 아이에겐 좋은 추억도 나쁜 추억도 그들이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나 어릴 때 한두 번 갔었던 외갓집에 대한 추억, 그때는 교통상황이 좋지 않아 걸어서 외갓집을 가야만 했으니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기대가 컸었다. 시골에 사셨지만 유난히 희고 고왔던 외할머니, 외할머니한테는 땀 냄새가 아닌 그렇다고 화장품 냄새도 아니었는데 참 기분 좋은 냄새가 폴폴 났었던 기억이다. 우리 딸들도 어릴 때 조막만 한 발로 산등성이를 두 번이나 넘어 깔깔거리며 외갓집에 갔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우리 친정어머니는 대식구 건사하시느라 일에 찌들었고 힘겨운 농사일에 항상 바쁜 기억뿐이었다, 어쨌든 어린 손주들에게 외갓집은 왠지 좋은 향기. 사랑 넘치게 큰 팔 벌려 환대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사시는 기분 좋은 곳이다.


  올해 초 2~3살 때 2년 동안 돌봐주었던 손녀가 가깝지만 쉽게 오기 힘든 신도림으로 이사를 갔다. 손녀와 나는 2년 동안 일심동체, 분신사바처럼 많은 걸 함께 했었다. 힘들어 짜증 내고 어린이집 안 가려 떼를 쓰며 난감할 때는 우린 세뚜세뚜로 옷도 맞춰 입고 색깔을 맞추든지, 치마면 치마, 신발이면 신발을, 맞춰 입으며 기분 전환을 시켜서 그 상황을 잘 넘겼다.


  어린이집 끝나면 외할머니 집으로 와서 꽃에 물도 주고, 꽃에 맘마( 달걀 껍데기를 갈아서 만듦)도 주고, 동요 CD에 맞추어 노래도 불렀고 피아노도 쳤다. 넓은 베란다  테이블에서 소꿉놀이도 하고 책도 읽었다. 또 할아버지가 광목천으로 메달아준 그네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딱 하나만 있는 그네, 그걸 타면서 외갓집은 마치 키즈 카페 같은 제2의 놀이 공간이 되었다. 처음엔 무서워 벌벌 떨며 그네에서 그냥 앉아만 있다가, 혼자 힘으로 일어서서 타 보기도 하고, 나중엔 혼자 힘으로 굴려서 타기도 하는 이런 커가는 과정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맛이 있어서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손녀를 돌봤다. 


  가끔씩 할머니가 피아노 쳐준다고 하면 꼭 생일 축하 노래 치라고 하고 온 식구들의 이름을 돌아가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도 금방 할머니 피아노 치는 걸 방해를 했다. 그런 모든 활동들이 손녀의 루틴이 되어서 이제는 그런 추억이 그리운가 보다.

그 손녀는 가끔 피아노도 치고 싶고 그네도 타고 싶다며 외갓집 가자고 한다고 하니 손녀를 맞이하는 우리 두 부부는 복이 터졌다. 엄마와 딸은 DNA 속 미토콘드리아가 같아서 손주들이 외할머니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또한 이어령 교수님은 같은 감나무라도 외갓집 감은 훨씬 시원하고 달다고 인터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지난 일요일에도 예기치 않게 온다고 해서 얼마나 반가운지 로또 맞은 기분이었다.

요즘은 유치원을 가더니 선생님 놀이에 푹 빠져서 나름 할아버지, 할머니 학생이 필요했던 것도 같다. 그동안 못했던 루틴을 다하고 선생님 놀이까지 다 끝내고 점심에 삼계탕까지 맛있게 먹었다.


 요즘 손녀는 박물관, 미술관, 워터 파크, 바다도 다니다 보니 이젠 외갓집에서만 노는 게 시들해진 듯 2차로 어딘가 가야만 한단다. 그래서 가까운 시흥 오이도 박물관을 가게 됐다. 벌써 손녀가 한 살 더 먹더니 나름 시야가 넓어져 자꾸만 자기의 생활 반경을 넓혀 나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이렇게 어린아이는 커가는 가 보다. 또한 인간은 새로움을 추구하고 그걸 경험함으로써 사고의 깊이, 문제 해결력,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커지나 보다. 우리 손녀가 어떻게 커갈지 기대가 크다.





매거진의 이전글 날씨 깡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