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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Oct 20. 2023

시민 주말농장은 손주들 생명 체험장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 상황이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다.

그 많은 것 중 기후, 날씨만큼 영향력이 큰 것도 드물다. 특히 기후 변화 위기가 한 국가, 아니 전 세계의 경제, 사회, 정치 문제까지 많은 부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라고 했던가


  조선 시대 땐 왕과 조정 신하들, 온 백성이 농사짓는 일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홍수 대비를 위해 제방과 댐을 만들어 치수를 관리했는데, 현존 최고(最古)의 낙동강 대나무 숲 제방이 있었다는 역사적 자료가 최근 양산시에서 발견되었다. 가뭄이 심할 때면 왕과 전 백성이 대대적으로 기우제를 올리며 간절히 비 오기를 기다렸다. 농업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24 절기에 맞추어 파종, 수확했고, 농사일을 시작하고 끝맺음하는데 24 절기가 매우 중요했다.


  올해 시민 주말농장에 3.3평짜리 딸네 것, 우리 것, 두 개를 분양받았다. 그곳에 농작물을 심는데도 알아야만 하는 것이 엄청나 시작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그냥 씨 뿌려 싹이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일은 순서가 있고 때론 적당히 묵히거나 기다리는 것,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했다. 3월쯤 시민 주말농장에 당첨되니 나는 당장 씨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데 손주들과 함께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주말농장 선배는 한밤중 최저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한밤중 최저 온도가 농사짓는 데 중요하구나! 몇 번이나 되뇌었다. 드디어 한밤중 최저 온도가 영상이 되었고 간신히 상추, 쑥갓, 아욱, 고추, 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파종 후 한동안 갑자기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 냉해라도 입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 농장은 대중교통이 닿지 않은 한적한 산속에 있다 보니 물 주러 다니는 것이 큰 부담이었고, 너무 외진 곳이라 시간이 있어도 혼자 가기는 겁이 났다. 주말에 남편과 같이 가니 제 때에 물을 먹지 못한 어린 모종은 배배 꼬여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간신히 꽃을 피운 오이, 완두콩도 엉망진창이 되었고 심기만 하고 열매 맺기만 기다렸던 나의 안일한 생각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럴 때 쏴 악하니 비라도 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마른하늘만 멀뚱멀뚱 쳐다보곤 했다. 바싹 마른 밭고랑에 물 조리개로 열심히 물을 주지만 마치 짝짝 갈라진 내 건조한 피부처럼 물을 머금고 있지 못하고 삽시간에 물은 어디론가 빠져버렸다. 날마다 밭에 가서 물을 주면 조금 나을 텐데 텃밭에 가기가 엄청 어려웠다.


  감자, 고구마는 원래 구황작물이라서 그런지 심한 가뭄 중에도 잘 자랐고 손주들이 직접 모종을 심었다. 그 감자가 주먹만 한 모습으로 땅에서 덩어리째 뽑혀 나온 순간 손주들은 흥분하고 들뜬 목소리로 

  “할머니, 땅속에서 감자가 줄줄이 따라 나와요. 우리 손보다 큰 것도 있어요. 어머! 애기 감자도 올망졸망 엄마 따라왔나 봐요, 하하하.” 

자기들 손보다 크다며 대보고 소리 지르며 난리다. 


  아이들은 방울토마토, 오이도 가끔 따보고, 보라색 가지도 따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다. 다른 집 텃밭에 앙증맞게 매달린 애기 수박, 노란 참외, 보랏빛 라벤더 꽃, 간간이 날아다니는 흰나비, 노랑나비에 홀려 쫓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력해서 일군 땅에 또 다른 생명체가 대비되어 희열감은 극에 달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 거침없이 뛰어다니며 까르르까르르 웃는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텃밭에 가득 찼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농장 체험, 찐 생태 수업이었다. 기뻐 뛰어다니는 귀여운 손주들과 더 자주 이런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찌는 듯한 땡볕 때문에, 갑자기 불어오는 태풍과 지루한 장마 등 변화무쌍한 날씨로, 때론 서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서 여러 번 가진 못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어느 여름날 저녁, 피서지 삼아 초록 나무 그늘 아래서 가족들과 함께 먹은 샌드위치와 과일, 아이스크림 케이크 또한 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이 조그만 텃밭은 커가는 우리 손주들에게 자연, 식물 체험 학습장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내 년에도 기회 되면 또 이런 재미를 손주들과 함께 느껴보고 싶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농촌에서 자랐고 지독하게 농사일도 거들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농사일? 아니 무슨 일이든 자기가 주관하느냐? 아니면 조력자로 남느냐? 하는 것은 천지 차이인 듯하다. 더욱이 우린 둘 다 눈썰미도, 기억력도 없고, 자연의 순리를 파악하지 못해서 파종 때 갈팡질팡하다가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한여름이 지나고 가을 김장 배추, 무, 쪽파, 갓을 심는 게 문제였다. 언제 심을 것인지? 

씨앗으로 심을 건지? 

모종으로 심을 건지? 남편과 나는 항상 달랐다. 

나는 뭐든 생각나면 앞뒤 재지 않고 즉시 실행에 옮기는 행동형이고, 그는 조금 시간을 두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신중한 유형이다. 어떨 땐 내 선택이 옳고, 어떨 땐 그의 선택이 옳다. 


  여름 채소 키울 때는 그렇게 비가 안 와서 아무리 채소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를 지켜볼 뿐, 당장 우리가 해결해 줄 특별한 방법이 없어서 칼에 베인 듯 가슴이 아려왔었다. 그러나 가을배추, 무, 쪽파, 갓을 심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날씨가 좋아서 잘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도 날씨가 효자 노릇을 해주니 밤이슬만 먹고도 잘 자라준 채소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손과 마음으로 자연의 혜택을 흠뻑 받으며 일궈낸 수확물이라서 더 애착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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