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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Oct 20. 2023

손주들 작은 도서관 첫 체험기



  요즘 곳곳에 접근하기 쉬운 작은 도서관이 있다. 그 좋은 곳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이용자의 몫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각 도서관에서 기획한 알차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에 손주들과 작은 도서관 첫 경험을 해보니 우리 딸들 키울 때 도서관, 책 속에 있는 보물 캐는데 의식 있는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 해준 게 죄책감이 들었고 후회가 된다. 아이가 커가면서 독서하는 아이로 커가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부모가 특히 신경 써야 한다. 나는 어릴 적, 아니 성년이 되어서도 교과서나 참고서 이외는 책을 읽어본 경험을 찾기가 야박할 정도로 없다. 새벽까지 떠 있으며 존재감을 뽐내도 누구 하나 다정한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그믐달처럼. 나도 그렇게 책에 눈길 준 기억이 없다. 그때는 생존이 최우선이었고 부모님이 자식들 어떻게 큰지는 관심을 쏟으려야 여력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새벽바람 헤치고 딸 집에 들어가니 손녀는 “할머니! 어린이집에서 독서통장에 엄마랑 책 읽은 것 스티커 붙였어요.” 나는 평소 두 손자가 영어 숙제한다고 태블릿 PC를 너무 들고 파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다. 손주를 돌보고 있지만 나와 딸의 교육 관점이 다르니 마음의 갈등이 많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단칼에 거절당할 땐 불편하고 속상하지만 더는 내 의견을 주장하거나 내세우지 않는다. 세상에 자식 교육에 대해 엄마만큼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 다만 자기가 처한 상황, 여건이 어려워서 안타까운 거지!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출근 준비하는 딸한테 바싹 다가가 막내가 독서통장에 스티커를 붙이는데 이번이 너희 자식들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아침 시간, 특히 등원하기 전까지만 태블릿 PC 사용을 금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다행히 내 의견이 전달돼 딸은 삼 남매에게 취지를 말했고 실천하게 되었다. 며칠 동안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코 태블릿 PC를 켠다. "너,~~ 뭐~~ 야~?, 엄마와 약속했잖아~~" 


 "Sorry, grandma, my mistake!" 하며 저항하지 않고 얼른 태블릿 PC를 꺼주는 손주가 마냥 고맙고 귀엽다. 다행히 손주들은 엄마와의 약속을 소중히 생각하고 잘 따라주는 착한 아이들이다. 그들은 마치 북한의 오호 담당제처럼 서로 감시하며 신랄하게 할머니에게 일러바친다.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잡혀서 큰 놈은 만화책, 과학 동아, 수학 동아 월간지를 본다. 둘째는 영어책이나 동화책을 보다가 심심하면 블록 놀이나 포켓몬 카드로 논다. 셋째는 할머니와 책을 읽으니 세상 조용하고 한갓지다. 이렇게 내 생각, 내 의견이 우리 손주들 양육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산 증거를 눈앞에서 직접 지켜보며 그래 지성이면 감천인데 먹혀야지~~~.


  인간은 심심해야 창의적으로 놀고, 창조적 활동이 이루어진다는데 진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책을 들고 다니는 손주들 모습만으로도 그동안 짓눌러왔던 고단함이 눈 녹듯이 사그라진다. 아이들 모습은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 같아서 앞으로도 이런 모습 지속할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지지해 주고 이끌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관성의 법칙처럼 눈치 안 보고 조금만 느슨해지면 예전에 재밌고 편안했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 사실 유치원 등원 전에만 태블릿 PC를 보지 않기로 엄마와 약속했는데 자세히 지켜보니 두 아이는 하원 후에도 보지 않고 책을 보거나 다른 걸 가지고도 잘 논다. ‘아이들은 부모나 도와주는 양육자의 태도에 따라 요렇게도 변하는구나!’ 놀라웠다. 인간의 뇌는 경험보다 생각이 지배할 수도 있다고.

   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 바로 옆에 ‘희망 작은 도서관’이 있다. 나는 어린이집 자원봉사자로 그곳에서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라는 동화책을 읽어준 적이 있다. 나도 언젠가 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야지 생각하고 몇 달이 훌러덩 지나갔다. 낯선 건 항상 어렵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인데 그냥 발만 들이밀면 되는데 미루고, 생각도 못 하고 허송세월한 게 아까웠다. 어느 날 하원 때 작은 도서관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일단 아이들한테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자고 하니 들어가지 않겠단다. “그래, 너희는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만 책 빌려 올게.”라고 하니 새끼병아리처럼 쪼르르 따라 들어온다. 



  도서관 첫 경험인데! 무슨 책을 빌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앤서니 브라운 책장을 슬쩍 훑어봤다. 처음부터 글밥이 많은 걸 건네주면 보기도 전에 질릴 수도 있겠지? 손주들에게 글밥이 하나도 없는 ‘밤마다 환상 축제’라는 큰 팝업 책을 뽑아 주었다. 딸 이름으로 대출 카드를 만들고 책을 딱 한 권만 빌렸다. 날마다 손주들은 톡톡 튀어나오는 팝업 책을 보고 또 보고 깔깔거렸다. 1주일 뒤 책을 반납하기로 했다. 그날은 하원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서관에 들러서 무슨 책을 빌리는 것이 좋을지 탐색하고 아이들을 맞이했다. 하원 길에 팝업 책 반납하고 빌리자니 또 들어가지 않겠단다. “그럼 멀리 가지 말고 문밖에서 기다려! 나 혼자 들어가서 책 빌려올게.” 또 두 놈이 쪼르르 따라 들어온다. 


  작은 도서관은 마치 가정집 거실 같았다. 자기 집 거실에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책 읽는 것처럼 포근하고 아늑했다. 마침 그 도서관에 몇몇 언니, 오빠들이 이미 책을 읽고 있었다. 이렇게 색다른 공간에 들어오는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은 첫 경험이라 어정쩡하니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얼른 구름빵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을 뽑았다. 알사탕은 어린이 뮤지컬로도 유명해서 손주들이 이미 그 뮤지컬을 봤고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어서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깥 날씨는 추운데 작은 도서관은 어릴 적 파고든 아랫목처럼 뜨끈뜨끈해 세 살 손녀에게 책 읽어주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이런 곳이 작은 도서관이구나! 난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고 손주에게도 무엇이든 경험해 주고 싶어 하는 경험 우선주의자다. 한 놈은 방바닥에 깔린 동화책 그림만 보며 책장을 넘겼다. 몇 권 같이 읽고 한 권씩 빌렸다. 손자는 ‘으리으리한 개집?’을 

손에 든다. “성규야! 왜? 이 책을 골랐어?” “제목이 재밌어 보이고 그림도 멋있어 보여서~~.”


  사실 제목이 재밌어 보이는 손자가 고른 책은 슈퍼 거북, 슈퍼 토끼를 쓰신 유 설화 작가님 그림책으로 재미와 교육 둘 다 잡은 수작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감성, 인성을 키우는데 딱 알맞은 맞춤형 책이었다. 중간중간 가슴 팍팍 울리는 글과 그림에 가끔 울먹거리며 울고 웃었다. 책 속에서 스멀스멀 퍼져 나오는 따스함은 솜이불이 주는 따스함과는 결이 달랐다. 나는 손주들과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연결된 듯, 그 순간 한마음으로 결속된 듯 희열감이 일었다, 어쩜 이렇게 재밌게 글을 쓰고 아이들 마음을 확 사로잡는 그림을 그릴 수 있지! 군데군데 웃음 유발하는 순간, 피식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해바라기처럼 환한 웃음 머금은 우리 손주들. 좋은 책은 이렇게 우릴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신세계, 새로운 여행지로 이끌었다. 들뜬 마음으로 빌린 책 두 권을 당당히 들고 나오는 모습은 할머니가 발굴해 준 보석인 듯 빛났다. 다다닥 신난 발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나는 딸이 퇴근하자마자 쫓아가 손주가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성규는 책을 정말 잘 고르더라. 성규가 빌려온 책 한번 볼래? 우리 성규는 책을 고르는 안목이 남달라! 아주~~ 특별해요!”라며 칭찬을 뻑적지근하게 했다. 

엄마의 인정 뽀뽀를 간절히 바라는 손자의 두툼한 입술은 봉긋 피어나 꽃봉오리가 되었다. 

매슬 로우 욕구 5단계 중 자기 존중 욕구, 즉 인정욕구는 어른이건, 아이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인간은 인정받음으로써 자존감이 올라가고 기가 살아난다. 아이도 어른도 일단 기가 죽으면 끝이다. 아이들은 특히 그 누구보다도 생명줄 같은 자기 엄마한테 인정받는 걸 최고로 생각한다. 이렇게 오늘은 손주에게 처음으로 실제 도서관에 가는 길을 안내했다. 딸은 ‘이렇게 알뜰살뜰 손주들 정서, 감정, 교육 영역까지 돌보는 엄마 마음 헤아릴까? 직장 일, 가사 일이 너무 벅차서 자기 힘든 것만 더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큰딸은 뜻밖에 “엄마, 오늘도 정말 고마워요. 내가 못 하는 것을 엄마가 알뜰살뜰 챙겨서 대신해 주니 참 힘이 돼요.” “나~두~~~! 언제나 자랑스러운 우리 딸 때문에, 우리 손주들 때문에 힘도 들고, 으쌰으쌰 힘도 난단다.” 그래도 우리 딸이 접착력 강한 본드처럼 믿는 구석, 비빌 언덕이 현재 손주들 돌보는 친정엄마겠지? 너의 힘든 짐, 세상사 헤쳐 나가는 데 어려운 마음 같이 들어주면 내 딸에게 초겨울 손톱 끝에 달랑 남은 봉숭아 물만큼 희망이 될까? 어릴 적 엄마가 직장 일과 가사 일로 너무 바빠서 너희들을 충분히 챙겨 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외로웠을 마음에 대한 보상이다. 끝없이 퍼줘도 퍼줘도 늘 상 부족함을 느끼는 딸에 대한 엄마의 무한한 애정이야. 방학이 가까워지니 딸은 “엄마! 그 작은 도서관에 4학년 짜리도 읽을 만한 책 있을까요?” 


고럼 나도 그곳에서 여러 권 빌려 읽고 있는데~~~.

딸의 미심쩍은 질문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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