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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Oct 20. 2023

모두 다 훌륭한 할머니, 보육교사 덕분이지요



  ‘아이들이 심심하니 정말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구나!’

요즘 삼 남매가 노는 모습을 보면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2020~2022년까지 절정기였던 코로나는 우리의 모든 평범한 일상을 사정없이 할퀴었고 여전히 위협적이다. 그 당시 바깥사돈은 큰손자가 초등 1학년, 5살 손자, 2살 손녀, 삼 남매를 하루 종일 돌보셨다. 가끔 사위와 딸까지 재택근무를 했던 시절이니 6명이 한 공간에서 북적거리는데 난관을 헤치며 손주를 묵묵히 돌보셨다. 그런데 손주들을 끔찍이 예뻐하셨던 사돈이 1년 6개월 동안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겨주시더니 갑작스럽게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오실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나는 행복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즐기며 평온하게 지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큰딸 삼 남매를 돌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나는 무척 마음이 불안정하고 불편했다. 아침마다 밥상머리에서 멍때리고 있는 아이들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게다가 두 손자가 영어 학원 숙제한다며 태블릿 PC로 볼륨 엎 해서 듣는 것이 계속 귀에 거슬렸다. 난 특히 소리에 민감하고 시끄러우면 귀가 제일 먼저 피곤해진다. 혹시 ‘아이들 귀, 청력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크게 듣는 건가?’라는 의문도 들어 딸에게 물었다.


  나는 계속 시끄러우니 머리가 지끈거려 볼륨을 줄여 달라고 요청했다. 남자애들은 원래 주의력이 부족해서 타인 말에 집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던데 ~~~. 잘 들리지 않는 건지, 듣지 않으려고 작정한 건지, 나의 피로감만 점점 쌓여갔다. 특단의 조치, 등원 전 1시간만 태블릿 PC 보는 걸 금지해 달라고 딸에게 요청했다. 아침 등원 전까지 4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심심한 틈을 타 큰 손자는 디지털 피아노로 놀기 시작했다. 피아노 버전을 일렉트릭 주법, 락 스피릿 주법으로 연주하고 때론 부드럽게 교회 합창곡 반주도 여러 가지 주법으로 연주했다. 반주를 녹음해서 살짝 틀어놓고 가는 센스 등 아침 시간에 또 다른 활기가 집안에 가득 찼다. 알라딘 주제곡 <A whole new  world>, 미녀와 야수의 <tale as old as time> 같은 디즈니 영화 OST를 연주하는 손자 모습은 마치 영화처럼 환상적이고 달콤했다. 요즘엔 유치원에서도 우리 고유문화 전승 개념으로 전통 놀이 체험을 한다. 작은 손자는 전통 놀이인 실뜨기, 팽이 놀이 등 점점 지금까지 놀지 않았던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다. 당연히 싸움질에 울 때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예전보다 자연히 책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더욱 놀라운 것은 하원 후에도 계속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진짜 뿌듯했다. ‘미디어 금지한 것이 정말 신의 한 수였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어느 날 아침, 밥을 먹은 후 여유로워지니 딸이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았다. 손자 둘은 책을 읽고 나는 막내가 들고 온 책을 읽어주었다. 아무도 소리치거나 찡얼거리지 않아 마치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듯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과 규칙을 지키는 것 같아 너무 신기했다. ‘뭐? 천국이 따로 있나? 이런 것이 천국이지.’ 난 딸 귀에 대고 “정말 이상적인 아침 풍경이지 않니?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어. 난 너희 키울 땐 왜? 이런 생각을 못 하고 살았을까? 참 아쉬워! 이렇게 후회스러운 일이 손주들 키울 때 더 확실하게 떠오르다니!” “엄마? 다 훌륭한 할머니 보육교사 덕분이지요.” 딸은 그렇게 말했다. 


  수다스럽거나 호들갑스럽지 않은 딸이 엄마를 인정해 준 것이다. 특히 딸한테 인정받은 것은 뜨거운 여름날 후드득 때리는 시원한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았을 때처럼 통쾌했다. 딸한테 인정받은 그 사실은 아직도 내게 뿌듯함과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요즘 많은 부모가 의례 것 집에서 어린아이 밥 먹일 때나, 외식할 때, 또는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동영상 틀어주는 모습을 자주 본다. 물론 아파서 입원했을 때처럼 정말 아이들의 아픔을 분산 시켜줄 땐 재미난 동영상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고맙게도 우리 손주들은 아직은 동영상 보며 밥 먹는 애들은 없다. 딸들의 꾸준한 노력의 결과물, 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실제 30여 년 전 내가 두 딸 키울 때는 영어 비디오 틀어주기만 해도 영어가 자동으로 습득된다는 이론이 팽배했다. 영어를 전공한 나도 우리 딸들이 어려서부터 영어를 접해서 영어를 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다. 언어학자 촘스키는 인간의 뇌는 언어습득 장치,  Language Acquisition Device인 LAD는 태어날 때부터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많은 광고는 이 이론을 유리한 편으로 끌어들여 외국어 습득은 특히 유아기에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13세가 되면 그 LAD라는 언어 습득 장치가 점점 없어진다며 영어조기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부모들에게 불안감과 조바심을 안겨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얼마나 우매하고 지탄받을 행동인가? 그때 교육 트렌드는 그랬고 그때는 그게 옳다고 굳게 믿고 맹목적으로 따라 했다. 

  물론 영어 조기교육을 통해 아주 좋은 결과를 얻은 아이들도 있다. 나는 30년 전 상당히 비싼 영어 비디오테이프를 사서 하루 종일 틀어주고 집안일도 하고 처리해야 할 일을 했었다. 아이 영어도 늘고 엄마 쉼도 생기고 다른 부모들보다 더 많이 투자했다며 의기양양했고 안심과 위로를 받았다. 그러면 저절로 영어가 터진다는 상업 술에 놀아났고 믿고 실천했다. 얼마나 무지한 행위였는지! 교육 현장에서 비디오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보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을 한 건가? 자책도 했었다. 비디오 증후군이란 영아기의 아이들이 비디오를 비롯한 텔레비전 등의 시각적 매체에 장시간 노출이 되면서 정상 발달에 문제를 보이는 증상으로 사회성 이상, 의사소통 장애를 말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비디오 증후군이 없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요즘 나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영어 조기 교육하는 것을 마뜩잖게 생각한다. 어느 정도 모국어가 원활하게 습득된 후가 적기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영어 노래 오디오로 듣기, 부모가 영어책 읽어주기 등으로 영어에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많은 도움 된다고 생각한다. 영어교육에 비디오가 도움 될 때도 있다. 단지 너무 어렸을 때부터 무분별하게 비디오를 노출하는 것은 지양했으면 한다. 그러나 결정은 부모가 내리기 때문에 교육 순서나 교육 철학에 이 할머니는 제삼자라 결국 꼬리를 내리게 된다.


  언어에도 생, 노, 병, 사가 있듯이 이렇게 아동 교육에 대한 학설도 교육 트렌드도 새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럴 때 부모는 시대의 흐름도 정확히 읽어야 하지만 시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교육관, 교육 철학을 가지고 소중한 자녀들을 위해 접근해야 한다. 부모 노릇도 똑똑히 해야 하고 무언가 결정하고 투자할 때는 가성비, 가심비, 효율성, 창의성까지 계산에 넣어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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