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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Oct 20. 2023

성호야, 너의 우주 쉼터는 여전히 이불인 거야?

 




  ‘아이들은 심장이 뜨거워서 가만히 있질 못하고 아이들이 뛰지 않으면 아픈 거’라고 한다. 동생이 생기기 전까지는 모든 사랑을 독차지했던 형. 


    ‘형은 동생의 만만한 스파링 대상일까?’


동생의 끊임없는 도전과 들이 받힘으로 형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형도 적당히 무시하거나 동생의 ‘애착 인형 던지기, 열심히 만들고 있는 블록 쓰러뜨리기’ 같은 소심한 반격을 하면서 나름의 생존 전략이 생긴다. 가족으로부터 100퍼센트 지지와 사랑을 온전히 받아왔던 형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마치 첩을 본 여인네처럼,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항상 형이 부러운 동생은 형에게 들이대고, 형은 한 대 주먹으로 쥐어패면 딱 좋을 텐데. 그래도 참고, 속상해하고, 또 우울해한다.


  오늘 아침도 행동 빠른 동생은 재빠르게 밥을 먹고 밥상머리에서 멍 때리고 앉아있는 형에게 시비를 건다. 두 손자가 쌈박질하다가 우는 놈, 도망 다니는 놈 집안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딸은 화가 치밀고 밥 먹으라고 재촉하다가 큰손자에게 “김성호, 너 밥 그만 먹어.”하고 결국 밥그릇을 뺏어 버렸다. ‘그것이 상처였을까?’ 아침 내내 우울해 보였다. 나 때는 말이야 언감생심 밥투정? 그런 애들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도 없었다. 설혹 밥을 안 먹어도 어른들은 “원래 창시(창자)는 못 ~~ 속인다. 뭐라도 먹었으니 안 먹는 거야!” 완전 무관심, 자연히 창시(창자)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니 밥상머리에 당겨 앉곤 했었다.


  퇴직 후 두 손자를 보면서 '제라드의 우주 쉼터'라는 동화책을 읽었다. 그때는 손자와 할머니의 우주 쉼터를 비교하면서 훈훈한 아침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우주 쉼터란 슬프거나, 힘들거나, 화가 났을 때, 마음을 안정시키고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만의 공간에 들어가는 일종의 ‘긍정적 타임아웃’ 제도 같은 것이었다. 오늘 아침 엄마에게 밥그릇을 빼앗기고 동생과 싸운 뒤 큰 손자는 상심이 큰지 이불을 둘둘 말아 뒤집어쓰고 얼굴을 파묻고 심드렁하다. 나는 딸이 출근 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성호야, 너의 우주 쉼터는 여전히 이불인 거야?” 

“응.” 풀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는 손자 마음을 달래주고도 싶고, 방 밖으로 나오게도 하고 싶었다. 야구 좋아하는 큰손자한테 비타민C가 듬뿍 담긴 귤을 보여주며 “성호야, 귤 받아!” 하니, 벽 뒤에 몸을 완전히 숨긴 채 얼굴만 반쪽 내밀며 귤을 받는다. “nice catch,”라고 우렁차게 외쳤다. 

“give it back.” 반사적으로 귤을 던진다. 우린 귤을 몇 순배 던지고 주고받았다. 

손주는 마지막에 어찌나 세게 던지던지 저기 ~~ 밥솥 뒤로 떼구루루 굴러가 박혀 노란 파편처럼 파~~ 악 터져 버렸다.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워, 워, 워, 우리 성호 엄청 파워 센데.”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린 서로 눈치 보며 시큼한 과즙이 흘러내린 귤을 까먹었다. 

  그 순간 우린 서로 쳐다보다가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져 나와 박장대소했다.

‘아직도 기분이 안 풀렸을까? 벌써 사춘기인가?’ 

몸은 벽 뒤에 완전히 숨기고 반쪽 얼굴만 내민 모습이 너무 웃겨서 하루 내내 그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 모습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못 그리는 그림이지만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을 정도의 충동이 일었다. 둘째 손자와 유치원 등원 길에 “성규야? 요즘 형 마음이 좀 슬픈 거 같으니, 형한테 너무 들이대지 말고 잘해라.” 그때 유모차에 탄 셋째가 “성규 오빠! 나한테도 잘해.” 하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그땐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아마도 도로 아미타불일 것이다. ‘그렇지! 애들은 싸우면서 미운 정도, 고운 정도, 들고 크는 거지 뭐.’ 조금만 더 크면 큰손자는 문 닫아걸고 아무하고도 말도 하기 싫고, 아는 체도 하기 싫고, 만사 귀찮니 즘인 사춘기가 도래할 것이다. 둘이라서 서로 의지하고 셋이라서 지원군이 더 있는 거다.



  나의 우주 쉼터는 장정 한두 사람 몸집보다 더 컸던 간장 항아리가 있었던 장독대였다. 간장 항아리가 어찌나 크던지 타인의 눈에 띄지 않아 하루 내내 숨어 있어도 누구 하나 찾는 이 없어서 안심되었던 그런 곳이었다. 난 거기서 무엇인지는 기억이 선명히 나진 않지만, 엄마한테 혼나고 숨어서 울음을 삼켰다. 단지 억하심정으로 내 엉덩이만 한 방석에 앉아 주로 학교 공부를 했었다. 그때 ‘책을 읽거나 일기라도 쓰는 방법을 선택했으면 오늘날 감성이 더 풍요로워져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이제 든다. 단지 식구들과 떨어진 한적한 공간을 발견했던 것이 무척 행복했었다.


‘나만 아는 공간!’

‘아무 죄책감 없이 바쁜 부모님 눈 피해 나만 숨어서라도 한가하고 편하게 숨 쉴 수 있었던 공간!’ 그곳이 바로 사춘기 때 나의 우주 쉼터! 여러분도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당신의 어릴 적 우주 쉼터는 어느 공간, 누구의 품이었는지?

여러분은 현재, 바로 지금, 나만의 공간, 나만의 우주 쉼터가 있다고 대답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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