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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Mar 27. 2024

북한에서 농민들이 몰래 빚어내어 즐겼던 술

- 북한 농민들의 고단함을 씻어내다, '농태기'를 음주해보았다.

북한에는 농민들이 즐겨 마신다고 하여 '농민주'라고 불린 술이 있다. 일반적으로 생산되는 술들이 서민들에게 까지 전해지기가 어렵다 보니 북한 주민들이 몰래 쌀앙금을 모아 밀주를 빚었는데, 이것이 그들에게 있어선 정말 단비와 다름없었다고 한다.


'농태기', 북한에서 농번기에 농민들의 큰 힘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술은 과연 어떠한 향과 맛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북한 농민들의 고단함을 씻어내다, 농태기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무난한 모습을 띄고 있는 병의 형태이다. 병목이 시작되는 부분과 몸체가 거의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곡선을 따라 올라가면 금색으로 각져있는 뚜껑이 술병의 마감을 지어주고 있다. 전면부에는 '농태기'라는 술의 이름과 함께 미소를 짓고 있는 농민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모습이 마치 고된 농사일을 하다 마시는 술 한 잔의 가치를 표현한 듯하여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병의 형태나 이런 쪽에선 큰 특별함을 가지지 않았지만, 확실히 라벨 자체는 술의 이름에 맞게 잘 만들어진 듯하다.


'농태기'는 '하나도가'에서 다올찬 쌀과 청결고추씨, 직접 재배한 천년초를 사용하여 빚어낸 술로서, 알싸한 고추씨의 스파이시한 맛과 진한 쌀의 풍미, 곡물의 구수한 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북한에서 생산되는 술들은 서민들에게 닿지 못하여 북한 주민들이 쌀앙금을 모아 몰래 밀주를 만들어 농번기에 고단함을 씻어주었다고 하는데, 그 가양주가 전해져 내려와 이렇게 하나도가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제품의 용량은 300ML, 도수는 25도, 가격은 14,000원. 혼자 마시기 적당한 양에 일반적인 소주보다 조금 높은 도수, 술 한 병 값으로는 약간 부담되는 금액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금액이 비싼지 안 비싼지는 일단 마셔봐야 알 일이지만, 고추씨가 들어갔다고 하니 상당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잔에 따른 술은 우리가 늘 봐왔던 소주들과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다. 투명하고 깨끗하며, 안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작은 기포들은 아름답기만 하다.


얼굴을 가까이 하니 고소한 향이 흘러나와 코를 적신다. 구운 곡식, 누룽지, 알코올, 누룩 등 구수한 내음이 은은하게 다가오고, 알코올과 함께 미미한 알싸함이 코의 끝에서 살짝 맴돈다. 보통의 희석식 소주보다 높은 도수를 가졌다고 하여 알코올의 역함이 특별히 느껴지는 것은 아니며, 구수함 뒤로 뭉툭한 알코올이 모습을 드러내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니 고소한 술이 부드럽게 혀를 감싸 안아준다. 향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누룽지나, 구운 곡식의 구수함이 두드러졌던 향과는 달리 약간의 감미와 함께 쌀의 고소함이 나타나고, 그 뒤로 누룩의 향미와 함께 조금의 맵싸함이 느껴진다. 투박한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맛매이며, 전체적으로 깔끔한 과정을 지니고 있다.

살짝 가벼운 바디감에 입 안을 곡식으로 채워가는 풍미를 지니고 있는 친구이다. 목넘김 이후에는 미약한 감미와 고소함, 알콜과 특유의 향이 남아있고, 25도라는 도수가 목구멍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이 때 후미의 길이는 4~5초 정도로서 여운을 느끼기에 나쁘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되며, 깨끗한 주감은 마지막까지 이어져 다음 잔을 준비하기 편하게 만들어준다.


농민들의 술이라고 하여 조금 거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부드러운 작품이었다. 구수한 향과 더불어 알싸하면서도 고소한 누룩의 향미, 약간의 단 맛과 그 밑으로 깔려 들어오는 순수한 알콜까지. 끝에 남는 알코올의 맛 때문에 약간의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적당히 고소하면서도 씁쓸한 술은 농사일 도중 회포를 풀어주기에 충분하였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굉장히 대단한 풍미를 보여준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이 술을 마시면 어렴풋이나마 농사일이 생각나는 것이 '농태기'라는 이름에 참 걸맞은 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열심히 밭을 일구다가 삶은 감자랑 같이 먹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술이라고 해야하나. 특히 다른 술과 달리 청결고추씨를 이용해 살짝 배어 있는 알알함은 알콜과 맞물려 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물론 정말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한식이 좋아 보인다. 삶은 감자에도 먹어도 나쁘진 않겠으나, 된장찌개, 국밥 등과 함께 하면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시원하면서도 뜨끈한 국물에 농태기 한 잔은 방금 막 모내기를 끝낸 농민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줄지도 모른다.


'농태기', 농민들의 권태로운 농사에 한 줄기 빛이 될 것 같은 술이었다. 고소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쯤 음주해 보길 바란다.


판매처에 따라 약간씩 가격이 상이하다. 10~20% 정도 차이가 나니 잘 보고 구매하는 게 좋을 것이다.


삶은 감자와도 잘 어우러질 것 같은 '농태기'의 주간평가는 3.7/5.0이다. 술이 가진 구수한 풍미가 조금만 더 진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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