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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Mar 29. 2024

오크통에 숙성되어 자라난 보리

- 오크와 만난 보리의 풍미, '모리29'를 음주해보았다.

오늘은 보리로 만든 소주를 한 병 가지고 왔다. 쌀로 만든 소주가 굉장히 다양하듯 최근에는 보리로 만든 소주 역시 여러 형태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오늘 가져온 술은 특이하게도 오크와 만나 조금 더 특별함을 지닌 친구이다. '모리29', 과연 이 작품이 가진 향과 맛은 어떨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오크와 만난 보리의 풍미, 모리29

겉으로 보이는 병의 형태부터 일반적인 전통주와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뭉툭한 몸통을 시작으로 하여 짧은 병목의 끝엔 보리가 그려진 금빛 뚜껑이 자리 잡고 있으며, 두꺼운 질감의 아래에 보이는 노란색 물결은 굳이 이 술이 보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전면부에는 라벨 없이 병 자체에 새겨놓은 술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역시 황금색으로 빛나며 술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려준다. 마개 부분에 달려 있는 띠지까지, 여러모로 디자인에 상당히 많은 신경을 쓴 것 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모리29'는 '강산명주'가 청정지역 부안에서 재배한 찰보리를 직접 도정하여 빚어낸 술로서, 오랜 시간 감압증류해 깨끗한 향미를 선보이며, 국내 최초로 보리소주를 오크에 숙성해 뒤로 갈수록 풍부한 바닐라 향을 느낄 수 있다.


어떠한 인공감미료도 첨가하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져 희석되지 않은 모리만의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고, 술의 풍미가 뛰어나 원액, 하이볼, 맥주 등 다양한 원료들과 섞어서 즐길 수도 있다고 한다.


제품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29도, 가격은 22,000원. 혼자 마시기 적당한 양에 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금 높게 느껴지는 알코올 함유량, 한 병 가격치고는 살짝 부담되는 값을 지녔다. 물론 늘 그랬듯이 이 가격이 비싼지, 비싸지 않은지는 마셔본 후에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잔에 따른 술은 희미하게 노르스름한 빛깔을 선보인다. 맑은 물이 고인 웅덩이에 황금색 보리를 한 두 방을 떨어뜨린 것 같은 모습으로서, 보리가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얼굴을 가까이 하니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잔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이 바닐라를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을 살짝씩 생보리와 누룩, 알콜이 겉돌고, 끝으로 은은하면서도 약한 오크향이 나타나 코를 감싸준다. 아무래도 오크숙성을 하였기에 사실 바닐라보다는 오크나 보리향이 더 강하지 않을까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풍부한 바닐라 향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에탄올 특유의 역함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역시 상당한 장점이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니 고소한 술의 풍미가 혀에서 맴돈다. 처음 혀를 대는 순간 약간의 맵싸함과 함께 보리의 고소함, 조금의 감미가 느껴지면서 입 안을 채워가며, 29도라는 상당히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향과 같이 알코올의 역함은 맛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질감 자체가 부드러워 혀에서부터 목넘김까지 전혀 거리낌 없이 이어지고, 바닐라의 향과 함께 오크의 향미, 미미한 알싸함 사이에서 나타나는 보리의 고소함이 맛의 매력 포인트인 것 처럼 보였다.

살짝 가벼운 바디감에 향보다 좀 더 진하게 느껴지는 오크의 풍미가 퍼져간다. 고운 목넘김으로 이어진 후에는 오크와 바닐라향, 알코올과 고소함, 미미한 씁쓸함에 속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매력이 느껴지며, 후미의 길이는 약 4초~ 5초 정도로 여운을 느끼기에도 충분하고, 다음 잔을 깔끔히 준비하기에도 나쁘지 않다. 오크와 보리가 묘하게 섞여 들어오는 것이 확실히 다른 전통주에선 느끼기 어려운 향미로 여겨진다.


코에서는 바닐라를 중심으로 한 원료들의 향을, 맛에서는 오크와 알콜, 보리를 중심으로 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술이다. 오크통에 숙성한 보리소주가 그렇게 많지 않기에 다양한 원료의 조화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은 한 번쯤 음주해 보아도 좋을 듯하다. 30도에 육박하는 도수에도 체감 도수 자체는 그렇게 높지 않으니, 잔을 너무 빠르게 반복하다 취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상당히 알딸딸해지는 기분이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곁들일 안주로는 회나 매운탕, 삼겹살 등을 추천한다. 삼겹살 한 점에 보리소주 한 잔은 참으로 만족스러운 시간을 가져다 줄 것이다.


'모리29', 바닐라와 오크, 보리의 조화가 인상적인 술이었다. 오크향이나 보리로 만든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어울릴 듯하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약간씩 상이하다. 한 10% 정도. 그리 큰 차이는 아니지만 되도록 잘 보고 구매하길 바란다.


찰보리로 태어난 '모리29'의 주간 평가는 3.9/5.0이다.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듯이 나 또한 취해가더라.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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