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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상규 Sep 05. 2023

생일파티를 하러 왔지만, 생일상을 차렸네요.

우당탕탕 그날의 생일 대소동

8월 말 어느 화요일 한 형님에게 연락이 온다.


"어 토요일 뭐 하냐?"

"오후에 여유로웁니다."

"그러면 밥 좀 하자. 생일상"

"그럽죠."


 뭐 이런 부탁이야 나한테 항상 있는 일들이어서 어렵진 않았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스노볼처럼 굴러간다는 것에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연어덮밥 - 사케동을 주메뉴로 해보자던 이야기는 어느새 12첩 조선시대 왕을 대접하는 상차림처럼 되어버렸다. 연어덮밥을 필두로 기본밑반찬 김치, 락교, 작은 고추에다가 채소볶음과 일본식 계란말이, 미소된장미역국과 잡채대신해서 메밀국수 그리고 떡갈비와 닭꼬치와 군만두까지.

음... 뭐 여기까진 우선 괜찮았다. 일찍 시작하면 되니까...


 사건은 9월 2일 토요일에 발생한다. 형님과 합심하여 장을 보고 주방으로 3시에 복귀한 뒤 나는 3시 30분에 만나자고 한 뒤 잠깐 쉬었다. 3시 30분이 되었고, 나를 불렀던 그 형님은 오지 않았다. 괜찮았다. 아직은.


 나에게는 사랑하는 동생 한 명이 날 도와주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았다. 아마도...


 4시 30분이 되어서 형님이 오셨다. 알고 보니 일이 하나 생겨서 처리하느라 늦으셨다. 괜찮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니까...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형님은 열심히 밥도 하고 이것저것 하나하나 하셨다. 굉장히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났다. 딱 거기까지.

 5시쯤 형님은 나에게 다가왔다. 슬며시 웃으며... 갑자기 회의가 하나 잡혔다고 하시며 나에게 금방 오겠다는 말과 함께 형님은 가버리셨다. 괜찮다. 나는 사랑으로 요리하는 사람이니까 괜찮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동생 한 명이 날 도와주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았다...

 하지만 금방 오겠다는 형님은 오지 않으셨다. 식사시간이었던 6시 30분의 30분 전인 6시가 되었다. 나의 사랑하는 동생과 오지게 뛰어다녔다. 연어 썰고 굽고 밥 담고 난리가 시작됐다. 요리는 항상 끝나기 30분 전에 진짜 난리북새통 전쟁통이라고... 그래도 괜찮았다. 굉장히 귀한 분의 생일상이었기 때문에 전혀 뭐 문제없었다. 전혀 내 마음에 어떠한 불편함도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하면 그만이다. 해야 하는 일을 기분 때문에 망치는 것은 삼류니까... 하지만 형님은 여전히 보고 싶었다.


 진짜 전쟁통이 끝나고 정리를 하는데 형님께 문자와 기프티콘이 왔다.

 황금올리브와 미안하다는 말...


 황금올리브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치킨이 아니다 이것은 황금올리브는 황금올리브다. 이걸 줬으니 됐다.


 나는 오늘도 왜 밥상을 차렸냐.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조금 난리 났고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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