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의 힘!
최근 고깃집에 눈에 띄게 늘어났다.
약 10년 정도 전 고기를 직접 구워주는 하남돼지가 뜨기 시작하더니.
광고를 앞세워 엄청난 가맹점 열풍을 주도한 명륜진사갈비가 대중들의 불판을 접수했다.
그리고 5년 전쯤.
'우대갈비'라는 갈빗대 중에 가장 맛있다는 갈빗대를 사용하여서 짚불구이로 제공해 주는 '몽탄'이 뜨기 시작했다. 몽탄은 여전히 핫하지만, 몽탄의 시작으로 고깃집의 패러다임은 바뀌기 시작했다.
1. 오프라인은 공간점수로 승부한다.
시대적인 흐름이 그렇듯 온라인으로 매출이 가능한 상황 속에서 오프라인은 '정확하고' '찐한' 공간성을 주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몽탄은 오래된 건물을 사용함으로써 '향은 기억을 남긴다.' 라는 슬로건과 잘어울리는 공간. 그리고 그 분위기를 이어주는 매게체인 '짚불' 까지 사용했으며, 가마솥뚜껑에서 구워 먹는 그 느낌까지 잘 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트렌드를 잘 보여주듯 작년 엄청나게 핫하다 못해 판을 뒤집어버린 마곡동의 '산청 숯불구이'는 그야말로 고깃집의 '판을 뒤집어버렸다.' 경남 산청을 그대로 빼다 박아놓은 듯한 공간성은 불편한 의자이지만 그마저도 '산청'이다. '산청'의 쌀포대, '산청'의 물, 심지어 정육을 위해 돼지도체가 걸려있음에도 (가짜이지만) 그 마저도 '산청'이다.
서울 사람들이 아무 때나 이렇게 '산청'을 갈 수 있었을까. 없다는 것이다.
산청은 그 흐름 그대로 작년 오픈한 을지로점 또 한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2. 새로운 부위? 새로운 고기?
그러면서 오프라인의 중요성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쿠팡으로 모든 것이 해결가능한 시대로 접어들면서 오프라인은 체험이 위주가 되어가고 있고, 체험이라는 것은 기계가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을 주어야 했다. 꽤 오랜 시간 지났지만, 원조부안집의 피자고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브랜드에서 나오는 새로운 명칭들. / 쫀득살 / 우대갈비 / 돈항정살 등등 새로운 부위들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쿠팡'에서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쿠팡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중요하다. 쿠팡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 기계화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기계화되지 않은 점은 '아직' 사람이 움직여야 하고, 실제 인건비가 포함된 프리미엄 가격을 받아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 가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칭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해냈다는 것을 티 내는' 것의 대표 격이다. 그러나 그것은 트렌드의 순응하는 아주 훌륭한 움직임일 것이다. 그리고 명칭을 바꾼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평가할 것이다.
이 부분도 가장 핫한 '산청'을 보자. 대단하다. 전지를 섞어서 판다. 그럼에도 재래식 흑돼지한판의 가격은 썩 싸진 않다. 그러나 공간성과 이 투박하게 썬 고기를 보면, 이것은 그야말로 '산청'이다. 영어 표현에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literally'이다. 그야말로 '산청'이다.
고깃집이지만, 그 고기를 위해 다른 부수적인 것들을 채워주는 '사람' 때문에 그 집을 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선시대 당시 영조가 만든 '탕평채'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붕당정치가 판치던 그 시대 영조는 이 많은 세력들을 하나로 움직여야 했다. 그 방법으로 영조는 다양한 당파에서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시행했다. 그리고 대신들에게 '탕평채'라는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와 이 정책의 의미를 드러냈다. 탕평채는 청포묵과 김 미나리 고기 지단 등을 초간장에 섞은 간단한 음식이다. 그럼에도 그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비주얼까지 정갈하고 아름다우니 지금 우리에게까지 그 '탕평채'라는 음식이 전달되는 것이다. 음식의 퀄리티나 난이도 보다 그 의미와 네이밍이 중요한 것이다.
음식의 이름에는 많은 유래들이 있다.
전쟁당시 고기와 빵을 한 번에 먹고 싶어 만들었던 '웰링턴'은 웰링턴 장군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샌드위치도 비슷하다. 도박을 하던 샌드위치 공작이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문했고 나온 것이 '샌드위치' 다.
이름은 그냥 짓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아담이라는 가장 첫 인간이 창조되고, 창조주가 시킨 일은 자신이 만든 창조물들에 이름을 더한 것이다. 자 여기서 중요한 원리가 생겨난 것이다.
창조물을 만든 것이 아니다.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름을 짓는 능력은 엄청난 능력이다.
엄마라는 존재들도 엄마라는 존재 이전에 이름이 있다.
수많은 사업의 아이디어들을 연결시키는 것은 '이름'이다. 스마티기기 나 IT 기술이라고 하는 것보다 '애플'이라는 이름은 그 상징성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이름 짓기는 내가 이 세상에 창조물을 '나'의 창조물로 만드는 시작인 것이다.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이미 있던 거 어떻게 잘 좀 조합해 가지고 내 걸로 만드니 좋으냐."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그걸 복기했다면,
얼른 이름 지어라. 그게 능력이다. 그게 창조의 시작이다. 얼른 이름 짓고, 법적으로 등록해라.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에 얼른 뛰어들어라.
그래야 너의 창조력이 너의 가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