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과 들꽃을 좋아하는 친구!
그 친구의 남편이 그녀의 곁을 떠났습니다.
마치 하늘이 먼저 슬픔을 들은 듯, 우리 대신 울어주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 한쪽이 조용히 무너져 내린 것을 비마저 알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눈물이 비와 섞여 흐르겠지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떤 손길로 그녀를 감싸야할지
말과 손이 모두 작아져 버렸습니다
내리는 이 빗속에서 내가 우산이 되어 내리는 비를 다 막을 수는 없어도, 조금 그녀가 덜 젖도록 함께 하려는 마음에 유용주 시인의 시가 다가왔습니다.
--유용주,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 겨>, 문학동네, 2018, 중에서
유용주(1960~ ) 시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독한 가난으로 어린 시절부터 중국집, 공사판을 떠돌며 세상을 오롯이 몸으로 견디며 치열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처음 '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9살 때 정동제일교회 야학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야학 국어시간 칠판에 적혀 있던 윤동주의 「서시」를 보고 처음으로 시에 대한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 시절 펴낸 시집 『오늘의 운세』가 우연히 백낙청 선생의 눈에 띄어, 199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서 「목수」 외 두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7년 제15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으며 2000년 [실천문학] 가을호에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시집으로 『가장 가벼운 짐』, 『크나큰 침묵』, 『은근살짝』,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겨』, 『어머이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젊었을 때』, 시선집 『낙엽』 등이 있다. ... 1997년 신동엽문학상, 2018년 거창 평화인권문학상을 받았다.”...(저자 소개에서)
복효근 시인은 유용주 시인의 시집 추천사 글에서 “ 시에 나오는 누구누구 이렇다 저렇다 하는 짠한 얘기는 모두 사람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의 방언이다. 그런 유용주는 ‘님’으로 기억되기보다 ‘놈’으로 사라지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의 변치 않은 뚝심은 얼마나 다행인가! 외모도 시도 투박하면서 우직한 시인이 그 안에 감추고 있는 여린 꽃잎 같은 순정성은 당분간 흉내 낼 자가 있을 것 같지가 않다”라고 썼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나는 저항함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꿈은 시골에 들어가 사라지는 것이다. 솔직히 이름도 얻고 잘 나가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이미 늦었고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작품은 고독해야 나오는 법이다”
시인의 슬픔은 겉으로 드러나는 눈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과 말 사이의 공기,
쉼표 뒤의 정적,
그리고 끝내 말 줄여 버린 공백의 한숨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거창하게 표현되지 않은 사소한 일상 속에 스며 있는 슬픔이어서 오히려 더 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시 속에서 거론되는, 일찍 곁을 떠난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빗 속 하늘을 쳐다보겠지요.
이 시를 덮으며,
나도 잠시 조용히 앉아 봅니다.
누군가의 빈자리에,
말 대신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