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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 수행 중

by 윤재


바람도 멈춰 선 듯 고요한 이 섬에, 오래전부터 한 문명이 섬의 질서를 수호하고 있는듯합니다.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 그리고 고요한 시간을 품은 섬들.

신비로운 자연과 고대의 이야기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이스터섬에는 무게와 침묵 속에서도 어떤 규칙성과 질서가 있는 듯합니다. 바다 한 가운데 고립된 이 조용한 섬은 시간마저 조심스럽게 흐르는 듯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유산은 오래된 수학처럼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무너진 것과 남겨진 것, 세워진 것과 바라보는 것 사이에서, 인간 공동체가 이룰 수 있는 정묘함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말을 하며 껌을 좋아하는 모아이 석상?

2006년에 개봉된 벤 스틸러 주연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 등장하지요. 밤이 되면 박물관 전시품들이 살아 움직이며 많은 일들이 정신 못 차리게 벌어지는 기발한 설정의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벤 스틸러를 ‘얼간이( dum dum)’라고 부르며 그에게 ‘gum gum 껌’을 달라고 요구하는 귀여운 캐릭터로 출연합니다. 움직임은 없지만 상황 판단과 예측까지 하는 따뜻한 심성의 영화 속 모아이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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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IMDb




에쿠아도르의 만타를 거쳐, 리마의 카야오(callao) 항구에서 이틀을 정박하고, 피스코의 산 마틴항구를 지나 나흘간의 해상일을 거쳐 이스터섬에 도착했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우리는 마추픽추를 포함한 45일 정도의 남미 육로 여행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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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를 다시 방문하게 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었기에 이번 재차 방문은 다른 의미에서 설레었습니다. 리마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많은 승객들은 항공편으로 마추픽추를 다녀왔습니다. 그들의 마추픽추 방문은 많은 이야기들을 남겼습니다. 마추픽추 투어팀 일부가 항공편 일정을 맞추지 못해 팀이 분리되고 그 와중에 의사소통의 문제와 승객의 컨디션 난조로 어려움이 많았었다고 전합니다.



칠레에서 3,500km 떨어진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에 위치하고 있는 삼각형 모양의 이스터섬은 고립된 외딴섬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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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에게는 라파누이(Rapa Nui, 커다란 땅)로 불리지만 실제 크기는 제주도의 약 10분의 1 정도의 크기이지요. 연구와 추론에 의하면 이 섬에 처음 폴리네시아인들이 뗏목을 타고 도착했을 때는 현재는 멸종된 라파누이 코코 야자수 나무가 섬 전체를 뒤덮고 있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추론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으로는 거대한 석상 ‘모아이’가 아이러니하게도 이스터섬을 멸망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즉 모아이를 만드는 데 부족들 간의 경쟁이 깊어지고, 모아이 석상을 옮기기 위해 나무들을 많이 벨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이런 가설 외에도 기후 변화를 제기하는 이론도 있습니다. 15세기부터 식량난이 시작되었고, 부족 간 충돌도 심화되어 배를 만들어 낼 나무도 없이 고립된 상황에 빠졌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멸하던 라파누이섬은 1722년 네덜란드인 탐험가 야코프 로게벤(Jacob Roggeveen)이 섬을 발견한 날이 부활절인 것에 유래되어 이스터섬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사람은 거의 없고 해변가에 커다란 모아이 석상만 지키고 있어 이 섬을 발견한 사람들이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현대 의학이 발견한 최고의 불로초로 불리는 ‘라파마이신’이 발견된 곳도 바로 이스터섬이라고합니다.



한때 번영을 자랑하던 고전기 마야 문명은 서기 800년 이후 붕괴되기 시작했는데 역사의 뒤안길로 갑자기 사라진 고대 문명의 소멸 원인은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화학자·인류학자·지리학자·생물학자·식물학자 등으로 구성된 미국 연구팀은 고전기 마야 문명이 저수지의 독극물에 의해 붕괴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마야 문명의 대표 유적인 티칼이 버려진 것은 여러 재앙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다. 이번 연구를 통해 수은과 유기 오염 물질 등의 요인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는 장기간의 가뭄과 환경 악화가 도시 인구 감소와 티칼 쇠퇴의 원인이라는 가설을 강하게 뒷받침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기록할 수 있는 문자가 있다면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겠지만, 고립된 지역인 라파누이의 멸망은 현재로서는 가용할 수 있는 연구 방법을 적용하여 추론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아이는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돌 조각상으로, 주로 섬의 해안에 일렬로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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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조각물은 섬의 고대 문화와 인상적인 기술력을 대표하는데, 여전히 모아이의 세움과 그 의미에 대한 미스터리가 남아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문화나 외부 영향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었기에 섬의 역사는 여전히 알려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1995년에 개봉된 영화 <라파 누이>는 미지의 섬을 이해하는 일부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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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야자수가 울창하고 아름다웠을 화산섬의 추억과 모아이 석상의 신비로 대변되는 이스터섬에 텐더 보트를 이용하여 섬에 도착했습니다. 일명 ‘아쿠아 리무진’이라고 유쾌한 별칭을 갖고 있는 셔틀 보트를 이용해 승객들은 배에서 섬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바다는 쪽빛으로 푸르고 맑으며 날씨는 투명하게 내리쬡니다. 승무원들은 ‘No rain, No wind, Not hot, Not cold’라고 좋아합니다. 공항에 도착하게 되면 꽃목걸이는 떠나갈 때는 조개로 만든 목걸이를 선물로 받는다는데, 항가로아 부두에 도착한 우리들에게는 조금 썰렁한 분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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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선박이 목적지에 정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적지 수면이 너무 얕아서 크루즈가 접안하기 어렵거나 항구가 붐비고 부두 공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 크루즈배와 항구 사이에서 승객을 수송하는 데 사용되는 작은 보트를 운영합니다. 텐더보트라고도 하고 익살스럽게 ‘아쿠아 리무진’이라고도 불립니다. 비상시에는 구명정 역할도 합니다. 텐더로 항구에 오갈 때는 승무원들은 긴장하고 안전에 최우선을 기하려고 합니다. 물론 승객들도 조심스럽고 불편을 느끼기는 합니다.
















햇빛이 어찌나 따갑게 내리쬐는지 모자를 쓰고 선 크림을 충분히 발랐어도 따끔합니다. 모아이 석상을 찾아가는 길이 어릴 적에 걷던 시골길 같이 흙먼지 풀풀 날리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습니다. 모아이 석상은 현지 법에 의해 보호되며, 모아이를 만지면 벌금이 부과된다고 합니다. 석상 앞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구분을 해 놓았고, 혹시라도 그 경계 안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으면 영락없이 주변에 있는 경비원들이 호루라기를 불어댔습니다. 시간과 환경에 대한 노출로 모아이가 자연적으로 악화되고 있지만 관광객들이 지속적으로 만지게 되면 진행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네요. 필수국립공원 가이드 규정에 따라 타 하이와 아나케나를 제외한 모든 국립공원 입장 시에는 허가받은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아이 석상 아후 아키비 Ahu Akivi는 전설 속의 선조인 호투 마투아왕이 처음으로 이 섬에 도착했을 때 거느렸던 7인의 신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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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스터섬의 아후 통가리키에서는 서태지의 뮤직 비디오가 촬영되었습니다. 현지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고 촬영을 했는데, 당시 바람이 너무 세서 무인 헬기가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답니다. 이스터 섬은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으며, 섬 전체가 화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화산인 타 하이(Tahai)와 롱이(Mount Rano Kau)는 이제 푸르른 풀밭과 넓은 초원으로 덮여 있지만, 여전히 그들이 이룬 자연의 흔적은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섬의 절벽과 그 위에 펼쳐진 태평양은 끝없는 수평선을 이루며, 눈으로 아름다움이 가득 들어옵니다.


이스터 섬의 주민들은 라파누이 어라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폴리네시아어의 일종으로, 전통적인 언어이지만 현재도 여전히 섬 주민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어가 주로 사용되는 언어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이스터 섬이 칠레의 속령이기 때문입니다. 라파누이인들의 전통은 그들의 신앙, 예술, 생활 방식에서 강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모아이 석상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상징성과 조상의 숭배는 그들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라파누이인들은 모아이를 세우는 일을 통해 조상과의 연결을 추구했으며, 이들의 건축술과 상징적 예술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스터 섬은 지리적으로 매우 고립된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자원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이 섬의 주요 자원은 농업, 어업, 그리고 수공예품입니다. 그러나, 섬의 토양은 크게 농업에 적합하지 않고, 수산 자원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섬 주민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적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으며, 외부 경제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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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섬은 칠레의 속령이기 때문에, 칠레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경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1877년경에는 겨우 111명만 거주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칠레에서 유입된 이주민들로 약 5,000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섬의 자립적인 경제 발전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필수 자원은 외부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고립된 섬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속 가능한 관광과 환경 보호가 이스터 섬의 중요한 경제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과도한 관광과 자원 개발이 섬의 자연환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환경 보호와 생태 관광을 중심으로 한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주민들은 모아이 석상과 자연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인 경제적 안정성을 위한 중요한 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돌하르방이 있지요.

현무암을 깎아서 만들어지는데, 크기는 대략 130~190cm 정도로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과 비슷한 크기도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 표정의 모아이 석상보다 우리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부드럽고 인자한 미소 띤 얼굴로 두 손을 앞으로 모은 공손하고 친근한 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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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방언으로 할아버지를 의미해서인지 온화한 할아버지를 만나는 인상을 줍니다. 돌하르방의 제작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성문 앞에 세워져 있던 위치로 보아 경계표지 또는 성안의 안전을 지키는 종교적 기능을 담당한 것은 아닌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스터 섬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모아이 석상이라면, 제주도의 대표 캐릭터는 돌하르방이 되겠지요. 최근에는 돌하르방을 변형한 캐릭터를 개발해 관광 상품으로 확장시키려고 하고 있답니다. '꼬마 하루방 제돌이'란 애칭도 붙이고.



이스터 섬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넘어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간의 여행이었습니다. 모아이 석상들 속에 숨겨진 고대의 이야기들과 라파누이인들의 삶의 지혜, 그리고 섬의 자연 속에서 나는 마치 인류의 근원에 가까워지는 경험을 한 듯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스터 섬은 그 어떤 여행지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며,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스터 섬은 인간과 자연이 맞닿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느낀 감동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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