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을 때
나무 그늘 흔들리는 걸 보겠네
병가라도 내고 싶지만 아플 틈이 어딨나
서둘러 약국을 찾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병을 앓는 것도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을 때
오다가다 안면을 트고 지낸 은목서라도 있어
그 그늘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겠네
마흔몇해 동안 나무 그늘 흔들리는 데 마음 준 적이 없다는 건
누군가의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얘기처럼 쓸쓸한 이야기
어떤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다 지워졌는데 그 눈빛만은 기억나지
눈빛 하나로 한생을 함께하다 가지
나뭇잎 흔들릴 때마다 살아나는 빛이 그 눈빛만 같을 때
어디 먼 섬이라도 찾듯, 나는 지금 병가를 내고 있는 거라
여가 같은 병가를 쓰는 거라
나무 그늘 이저리 흔들리는 데 넋을 놓겠네
병에게 정중히 병문안이라도 청하고 싶지만
무슨 인연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살펴보고 싶지만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멀쩡하게 겨울이 지나갈 때
--안희연 황인찬 엮음,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창비시선 500 기념시선집, 2024 중에서
손택수 시인의 시는 그 흔들림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을 발견하게 합니다.
일상의 무게 속에서 ‘병가라도 내고 싶지만 아플 틈이 어딨 나’라는 문장은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는 것이겠지요. 병을 앓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시인은 스스로에게 잠시의 쉼을 허락합니다. 하지만 그 쉼은 단순한 나태가 아니라, ‘어디 먼 섬이라도 찾듯’하는 행위입니다.
나무의 흔들림을 바라보며 마음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곧 그에게는 병가이자 명상의 순간이 되는 것이지요.
아프거나, 돌봄을 제공하는 우리에게,
쉼을 제공하게 하는 시로 다가옵니다.
시인은 흔들리는 나뭇잎 속에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네요. ‘어떤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다 지워졌는데 그 눈빛만은 기억나지’라는 구절에서 사라진 존재와 남아 있는 기억의 역설을 만나게 합니다.
누군가의 눈빛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빛과도 같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생의 조각들이 반짝이며 되살아나겠지요.
향기가 짙어 천리까지 향기가 전해진다는 은목서는 향수를 만들기도 하고
차로 마실 경우는 스트레스, 불안감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고급스러운 우디 은목서는 물푸레나무과로,
은목서의 맛은 맵고 약간 쓰지만 따뜻한 성질이라고 하니 반어적인 성질이
츤데레 여동생의 투정처럼 귀엽게 다가옵니다.
염증과 담을 없애주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며 기의 막힘을 없애주고 통증을
멈추게 한다고 하니 이 시국에 필요한 효과입니다.
사진 출처: 들꽃사랑연구회
산책 중에 나무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여린 몸짓으로 바람에 흔들리며 기지개 쭉쭉 피는 앙징맞은 모습에 할머니 미소가 저절로 나오곤 합니다. 잠시 쉼을 허용하는 시간들이 병을 낫게 하는 약이 되기도 합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지난 12월 이후
저를 힘들게 불안하게 하다가
이제는
두렵게 만드는 메마른 마음들을 날려봅니다.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는다 “는 한강 작가의 선언은 그래도 위로가 됩니다.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 바람 속에 깃든 사색으로
다시 힘을 얻어봅니다.
지인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 소설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500여 페이지가 되는 책이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오늘 읽은 분량 중에,
I felt a huge lump in my throat, and swallowed it.
(.... 중략....)
I realized I was holding my breath. 란 문장들이 있습니다.
목이 메고 억지로 삼킬 수밖에 없고, 숨 죽이는 시간이 두렵습니다.
Good luck 이란 구절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운이라는 것도 제게, 우리들에게... 와야 합니다.
긴 책의 분량도 끝나가는 것처럼
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