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알레르기 있다는 T엄마

by bony

T엄마는 한마디로 우리 ○○동 모벤져스 중에 최고의 언변을 자랑하는 우리들만의 '연예인'이다.


우리가 만난 초창기에는 여러 엄마들과 다 같이 만났다.

그래서 일대일로 만난 적이 처음엔 없었더랬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공원에서 우리 둘만 만난 어느 날, T엄마는 평소와는 이상하게 달랐다.


내가 아는 T엄마는 언변이 뛰어나고 자식교육 잘 시키며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치가 넘치고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놀리는 것이 주특기였다.

그래서 사실 난 처음에 T엄마가 배꼽 빠지게 웃겨 줄줄 알았다. 놀림을 당할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대일 대화를 해보니 세상 진지할 수가 없다.

재밌는 연예인이 아니라 딱딱한 뉴스 앵커 같은 느낌이었다.

아.. 코미디언들 중에 밖에서는 막 사람들 웃기다가 사적인 자리에 가면 별로 안 웃기고

어떤 이는 말 한마디도 안 하는 사람들도 있다더니... 딱 이런 느낌이겠구나 했다.

T엄마의 박식한 교육얘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을 무렵,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 배고프신가 보다... 여기 가까이에 낙지볶음 잘하는 집이 있는데 거기 가실래요?"

"아.. 네 좋아요!"

맛집인지 사람들이 우글우글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 아주머니들이다. 귀가 안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T엄마가 아는 엄마를 만났다. 마당발인 게 분명하다.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사뭇 정치에 몸을 담고 있는 분 같았다. 품위가 넘치는구나...

낙지볶음에 갖가지 나물들이 나왔다. 밥은 사발로 나왔는데 상당히 많아 보였다.

"여기에 이렇게 나물들을 넣고 이 매콤한 낙지를 넣고 요렇게 비벼드시면 돼요."

이렇게 말하고는 T엄마는 조금씩, 밥이 들은 큰 사발에 나물들을 넣고 있었다.

나는 원래 양이 적은 지라, 조금씩만 넣고 밥도 반이상을 덜어 냈다.

"어머, 밥 다 안 드세요?"

"네에, 제 밥 더 드실래요?"

"아니에요... 제가 탄수화물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저도 그렇게 다 못 먹어요.

아.. 그런데, 남기면 죽어서 저승 가서 다 먹어야 하는데.... 그나저나 나물은 더 안 드세요?"

"아우, 저는 다 못 먹어요."

"아깝다... 아까우니까 그럼 제가 먹을게요! "

T엄마는 내가 남긴 밥에 남은 나물까지 다 자신의 사발에 때려 넣었다.

고봉밥이 커다란 비빔밥용 사발 속에서 피어났다.

각종 나물과 버섯류들이 고봉밥에서 무성하게 자라난 듯싶었다. 밑에 있는 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누가 보면 나물과 버섯, 낙지만 먹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조금만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왕릉 같았다.

그에 비하면 적은 양의 나물반찬과 낙지가 얹어 있는 내 밥은 오늘 동냥에 실패한 초라한 각설이의 바가지 속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왕자와 거지의 밥상 같았다.


역시 맛집이라 모든 반찬들이 너무 맛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얼 먹던 지, 두 젓가락 정도만 너무 맛있고 그다음은 별로 맛이 없다. 배고프니까 먹는 거다.

그날도 나는 깨작깨작 거리며 밥을 먹었다. 그런데 T엄마의 먹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어느 순간 그 조그만 입으로 오물오물 거리며 그 많던 밥을 벌써 거의 다 먹었다.

"꺼억~~ 어머나!" T엄마는 입을 가리면서 살짝 웃었다.

"어.. 맛있게 잘 먹었다... 아.. 그런데 요새 왜 저는 소화가 이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음속에 있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그렇게 많이 드셨으니까..."

"네? 뭐라고요!"

"아... 아니에요..." 다행히도 못 들은 것 같았다.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꺼냈는데, T엄마가 자기가 사겠다며 나를 옆으로 밀었다. 힘이 어찌나 세었는지 나는 카운터에서 멀리 날아갔다. 계산도 해주고 역시 T엄마는 인성이 훌륭하다.

나는 감사인사를 여러 번 하며 식당에서 나왔다.

그런데 식당 바로 건너 맞은편에 크리스피 도넛이 새로 생긴 듯했다.

T엄마는 외국영화에 나오는 아이스크림차를 본 미국아이처럼 너무나 좋아했다.

"어머어머 웬일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피 도넛이다! 저건 꼭 먹어야 해요! 빨리 건너가야 하는데...

신호등이 언제 바뀌는 거지... 아이 참!"

아직 빨간 불인데 T엄마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러자 신호가 바뀌자마자, T엄마는 우사인 볼트처럼 도넛집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본 것인가?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하는 T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놀랐다. 벌써 T엄마는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내, 도넛상자 두 박스를 들고 나왔다.

"여기, 하나 드세요. 정말 맛있어요" T엄마는 인정도 많았다.

나는 몇 번 사양하다가 받았다.


그날도 나를 웃겨준 T엄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집에 와서 나는 T엄마가 사준 크리스피 도넛을 가족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아참참~! 탄수화물 알레르기 있다고 하지 않았나?

keyword
이전 10화혼내기만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