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딴 얘기하기 있기, 없기

by bony

장마가 끝났다더니... 밖에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M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오늘 별일 없지? 우리 잠깐 보자! H언니 하고 이따가 5분 뒤에 2동 놀이터로 나와~~!! 나 거의 다 왔어!"

"뭐어? 5분 대기조인 거야? 나 세수도 안 했어."

"럼 세수하고 옷 대충 입고 빨리 나와! 기다릴게."

나는 군인처럼 빠르게 나갈 채비를 하고 H엄마와 함께 놀이터로 갔다. 우리는 먼저 맛난 점심을 먹으러 구송도로 넘어갔다. 유명한 토스트집에 들어가 우리는 모두 햄야채 토스트를 시켰다. 비 오는 날에 바삭바삭한 토스트는 환상적이었다! 송도에 온 김에 우리는 토스트집 바로 앞에 있는 시립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해서 규모는 작은 시립박물관이었지만, 나름 볼거리가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가 내려서 인지 방문객이 우리와 직원들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구석기시대의 무덤터를 구경하고 있는데, H엄마가 먼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저번에 ○○대학 구내식당에서 아르바이트 잠깐 일주일 했잖아. 학기 초라 그런지 신입생들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많이 먹으러 와서 정말 힘들었어. 좀 시간이 지나면 밖에서 나가먹는다는데.. 아무튼 식판을 나르다가 엘보가 나가는 줄 알았다니까!"

"어머나, 힘들었겠다."

"그래서 이번에 나는 많은 걸 느꼈어.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H에게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돈 벌었다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어. 애가 느끼는 게 많겠지?"

열심히 듣고 있던 M엄마가 뜻밖에 대답을 했다.

"아니, 그렇지 않을걸?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다라고 생각할걸? 별로 느끼는 바가 없을 거야? 나도 우리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농사일해서 돈 벌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던데..."

H엄마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박물관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래도 우리 애는 느끼는 바가 있었을 거야."

"여기 에어컨을 빵빵 틀었나 봐! 너무 시원하다. 더위야 가라! 피서 온 것 같아."

"다음번 아르바이트는 몸을 쓰지 않는 걸로 해야겠어.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으니, 병원에서 힘들지 않게 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다음번엔 Y 데리고 박물관으로 와야겠다."


이렇게 두 엄마는 서로서로 다른 얘기를 했다.

절대 닿을 수 없는 평행선 같은 얘기... 각자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듣질 않는구나!

"뭐야? 둘이 왜 자꾸 서로의 말만 하고 듣지 않는 거야?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 너무 웃기다." 그런데 나는 이 상황이 낯설지가 않다.

"어이구, 언니 우리 둘 이러는 거 뭐 한 두 번이야. 그러려니 해."


우리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지나, 어느덧 조선시대로 왔다. 화려한 병풍에 인간이 썼다고는 믿기 힘든 멋진 한자가 쓰여 있었다.

우린 한 번 읽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당최 무슨 글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그때, 병풍 안에 그려진 멋진 수박, 등등에 우는 눈을 돌렸다.

그때, 내가 말했다.

"저 정도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언니는 못 그려."

포청천 같이 M엄마가 정확하고 빠른 판단을 내려주었다.

"응, 그래." 나는 빠른 인정을 했다.

이번에는 H엄마가 그 옆에 있는 산수화를 보며 M엄마에게 물었다.

"이 정도는 내가 그릴 수 있겠지?"

"아니, 못 그려." 역시... 누구에게나 편애하는 거 없이 공정하구나...

H엄마는 이번에는 정말로 초등학생도 그릴 수 있는 몇 개의 단순한 선으로 구성된 난초 그림을 보며 포청천 M엄마에게 확신에 차서 물었다.

"이건 내가 그릴 수 있다. 그렇지?"

"응, 언니. 그건 그릴 수 있어."

H엄마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이렇게 유물을 보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세 면의 큰 화면이 있는 디지털 영사관에 다다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바로 그 디지털 영사관과 비슷했는데, 여기는 좀 규모가 작았다.

화면에서는 천둥번개가 치고 있었다. 그리고 영사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H엄마는 여기서 한숨 자고 가도 될 것 같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M엄마가 실성한 듯 내 손을 잡더니,

"사춘기 애들 때문에 힘드니까 우리 그냥 번개 맞고 죽자." "내가 죽어야 게 끝나지!!!"

포청천의 이성의 뇌가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들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었다.

그래... 고통을 개그로 승화하자!


박물관의 마지막 출구 쪽, 김구가 나오는 영상에서 우리들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Y의 하교를 알리는 전화가 왔다. 두 시에는 집에 가야 한다며 신데렐라 M엄마는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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