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들이 초등저학년 때의 일이다.
전국에 있는 포켓몬빵에 미친 손주를 사랑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그리고 아들의 등쌀에 밀려 포켓몬을 좋아하지도 않는 엄마들을 오픈런하게 했던 누군가에게는 저주, 또 누군가에게는 은총같은 포켓몬 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아이들을 혼자 학교에 가게 두고 새벽같이 일어나 ○마트, ○플러스, 각종 편의점 앞에서,
포켓몬빵을 실은 배달트럭이 오기도 전에 몇 시간씩 기다리는 몇몇 엄마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다행히도 아들은 포켓몬빵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불행은 갑자기 찾아온다고 했나?
어느 날, 하교를 한 아들이 갑자기 포켓몬빵 타령을 했다.
친구 중에 한 명이 전설의 포켓몬인 "뮤츠"스티커(띠부띠부씰)가 포켓몬빵에서 나왔다며 자랑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뭐라고! 뮤츠인지, 부츠인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들의 눈빛은 사고 싶은데 못 사면 잠 못 자는 쇼핑중독자 같았다.
난 그런 아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 포켓몬빵은 사행성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유행이 지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했다. 하지만 아들의 귀에 이런 말들이 들릴 리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언제나 그렇듯 느릿느릿 등교 준비를 하는 아들이 못마땅해서 잔소리를 좀 했다. 그. 런. 데...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아들은 나를 자극하는 말을
툭 던졌다.
"쳇, 엄마는 포켓몬빵도 안 사주면서..."
휘말리면 안 되는데, 나는 휘말렸다
좋아... 그 포켓몬빵 한 번 사러 가보자...
그날 포켓몬빵을 사러 매일 역 바로 앞에 있는 대형 ○마트로 출근한다는 A엄마를 따라 오픈런을 난생처음해 보았다.
굳게 문이 닫힌 마트 앞에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매일 마트에 배달되는 포켓몬빵은 하루에 약 50개 정도라 약 25명 정도가 두 개씩 살 수 있었다.
나는 늦게 갔기 때문에 내 순서는 20번째였다.
잠시 후, A엄마와 잠시 수다를 떠는 동안,
구두를 신은 할아버지가 역에서 급히 마트로 달려오고 있었다.
급히 바람이 세게 부는 빗속을 달려오셨기 때문에 우산이 뒤집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멋쟁이 비싸 보이는 구두가 물에 다 젖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머리는 비에 젖어 미역이 되어 버렸다.
할아버지는 거친 숨을 내쉬며 내 뒤에 바로 서셨다.
"몇 번째로 서신.. 거.. 예.. 요?"
"20번째요."
"아, 그럼 난 21번째네... 아 휴~~ 다행이다. 난 주안에서 여기로 전철 타고 왔어요. 여기가 포켓몬빵이 제일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우리 손주 녀석이 얼마나 포켓몬빵을 좋아하는지 몰라요. 학교 갔다 오면 나한테 먼저 달려온다니까요.. 그리고 포켓몬빵 사줬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그 맛에 힘들어도 아침 일찍 오는 거지.. 허허허... 물론 포켓몬빵만 들고 곧 가버리지만...."
손주는 목적만 달성하고 가버렸구나...
그러고 보니 대부분 줄을 서신 분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그중에는 허리도 제대로 못 피시는 할머니도 계셨다.
드디어 기다리던 마트의 오픈시간,
한 마트 직원이 번호표를 들고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나는 예상대로 20번이었고, 오늘은 26번까지 빵을 받을 수 있었다. 27번째 사람은 탈락의 고배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천천히 마트의 문이 열였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맨 처음으로 들어가니 백화점에 vip룸으로 들어가는 기분 같았다. 포켓몬빵이 박스 안에 예쁘게 진열되었다. 계산대 앞에서 또 줄 서서 기다리니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고오스와 로켓단 빵 두 개를 고르고 계산을 하니, 다른 사람들이 급하게 뛰어가는 게 보였다.
뭐지?
A엄마가 말하길, 바로 옆, 여기서 약 50미터 거리에 있는 ○플러스에 비가 와서 빵배달트럭이 여기 마트보다 좀 늦게 들어왔다했다.
그래서 지금 빨리 뛰어가서 줄을 서면 또 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출구 쪽으로 뛰었다.
정말 미친 듯이...
하지만 난 한 십몇 년을 뛴 기억이 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뛴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제자리걸음이다. 러닝머신을 탄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뛰고 있는데 ○플러스는 당최 내 앞으로 다가오지 않는 걸까?
○플러스와 나의 거리는 노력을 해도 좁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내 앞을 전부 앞서 뛰어가셨다.
분명 내 뒤에 있던 그 멋쟁이 구두 할아버지조차 저 멀리 나를 앞서서 뛰어가고 계셨다.
나는 이내 포기하고 걸었다... 그러니 좀 살 것 같았다.
이 포켓몬빵이 뭐라고... 이러고 있는지...
운이 좋았는지 다행히도 난 순위에 들어서 빵을 더 살 수 있었다...
아들은 그날 뮤츠 스티커는 얻지 못했어도 날아갈 듯 좋아했다...
그리고 난 그 뒤로 몇 번 포켓몬빵을 사러 갔다가 뮤츠가 하도 나오지 않아서 오픈런을 더이상 하지 않았다.
대신 며칠 뒤에 포켓몬 가오레 기계 앞에서 아들과 줄을 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