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Y ~~^^
강렬한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어느 날, 영종도에 사는 M엄마와 T엄마가 자신들이 가꾸고 있는 텃밭에 물을 같이 주러 가자고 해서, S엄마, H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텃밭으로 향했다.
M엄마의 차를 타고 가는 길, 늘 똑같이 한바탕 수다가 벌어졌다. 차 안이 크게 음악을 틀어 놓은 것 마냥 들썩들썩했다. 어찌나 엄마들의 말이 빠르고 딕션이 정확한지 하나같이 래퍼들 같았다. 한동안 아이들의 방학 때문에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얘기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마구마구 쏟아냈다.
그리고 이들은 더욱이 소리가 잘 안 들려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뭐지? 래퍼들 경연장 온 것 같다.
귀가 멍해진다...
그러던 중 M엄마는 어제 있었던 Y의 얘기를 해주겠다며 운을 띄었다.
M엄마는 딸아이가 둘인데,
둘째인 Y는 한마디로 귀염둥이다.
유모차에서 기저귀 차고 말 못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9살이 다 되었다.
이젠 제법 말도 잘하고, 어찌나 똘똘한지 모른다.
Y는 귀염둥이답게 우리 아이들의 제일 막내로 엄마들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J엄마는 며느리감으로 미리 점찍어놓았다며 우리 아들에게 시집만 오면 Y가 원하는 거는 뭐든지 다 해 줄 거라며 큰소리를 뻥뻥 치곤 했다. 그럴 만도 한 게 J엄마는 우리들 중 제일 부자다.
그런 Y가 어제 M엄마와 같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날씬한 몸매를 원하십니까? 뼈 빼고 다 빼드립니다. 저희와 함께라면 당신도 멋진 몸매를 가질 수 있습니다."
라는 다이어트 광고지를 보고
M엄마에게 큰소리로 "우리 ○○○씨는 이번 생은 글렀어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M엄마는 엘리베이터에서 너무 창피해서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고 했다.
우리는 빵 터졌다!!
그리고 모두 그 말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이어서 M엄마는 이게 다가 아니라며 말을 이었다.
어젯밤에 M엄마의 사춘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중학생 큰 딸인 M이 수행평가가 당장 내일인데 준비를 하나도 안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래서 M엄마는 급하게 컴퓨터를 켜고
"그러게, 미리미리 좀 하지. 왜 맨날 급하게 하는 거야?"
이렇게 화를 내면서 자료검색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조용히 지켜보던 Y가
"아이고, 이것도 딸이라고... 도와주고 있네!"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또한 M엄마의 입에서 계속해서 그동안 만나지 못해 듣지 못했던 Y의 숨겨진 이야기가 줄줄 나왔다.
M은 모든 학원을 가는 것을 거부했는데, M엄마가 간신히 M을 설득해서 보내는 상황이었다. Y는 M의 수학학원을 끊게 하고 그 돈으로 자기를 과학학원에 넣어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M를 때리지 않고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서 저 모양이라며, 뺨이라도 때려서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평소 의사가 되겠다는 Y, 의사가 되려면 똑똑해야 한다는 M엄마의 말에 멍청한 의사도 있다며 자신은 멍청한 의사라도 하겠는다는 Y, 확실히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뭔가 다르긴 달랐다.
그러던 중,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Y에게 전화가 왔다. 차 안, 스피커폰으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이제 끝났어. 어디야?"
"응, 엄마 지금 이모들이랑 텃밭에 물 주러 가, 이제 우리 Y, 피아노학원으로 가"
"응, 알겠어. 그런데 엄마, 나 오늘 선생님한테 혼났어.
나랑 친구들이 화장실 문고리를 부서뜨려서..."
"뭐? 왜? 어쩌다가?"
"몰라,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그냥 잡아당겼는데 문고리가 뚝하고 떨어졌어."
"음... 우리 Y , 엄마 집에 가면 진실의 방으로 가야겠네... 좀 혼나야겠다."
그러자 Y가 여전히 차분한 소리로 말했다.
"혼내기만 하는 거예요. 때리지 않아요."
언니는 때리라고 하지 않았나?
우리는 동시에 웃어 버렸다.
역시 Y야!! 오늘의 웃음버튼은 Y였다.
이렇게 웃고 떠드는 동안 벌써 우린 텃밭에 다다랐다.
한적했다. 주위에 몇몇 가구가 듬성듬성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어떤 주택옆에 차를 주차해 놓고 내렸는데 바로 보라색 열매가 매달린 나무가 보였다. 복분자였다. 탐스럽게 열린 복분자를 따 먹어 볼까 하고 보고 있는데, 내 맘을 꿰뚫는 관심법을 하는 궁예 같은 H엄마가 여러 개를 따서 나를 주었다.
"언니, 먹고 싶지? 한 번 먹어봐!"
"이거 먹어도 되는 거야? 주인이 있지 않아?"
"괜찮아! 어이구! 먹어도 돼!"
나는 우선 한 개를 집어 먹었다. 맛있었다. 그런데, H엄마는 먹지 않았다.
"왜 나만 주고 안 먹어?"
"음... 나는 별로... 저번에 와서 보니 농약을 많이 치더라고..."
"뭐야?"
"괜찮아, 언니! 요새 농약 안 친 게 어딨어? 그냥 먹어도 돼!"
나는 입 안에 있던 아까 전까지만 해도 너무 맛있었던 복분자를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마신 듯 뱉어 버렸다.
농약 투성이 복분자 나무를 지나 조금 위쪽으로 가자 휑한 텃밭이 보였다.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토마토, 가지, 오이 등등을 심었지만 강렬한 햇볕에 채소들이 말라가고 있었다. 사막에서 길을 잃어 물 한 방울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을 밭에 꽂아놓은 듯했다.
불쌍했다.
출발하기 전에 S엄마와 재활용쓰레기통에서 보물 찾기를 하듯 찾은 몇 개의 생수병에 넣은 물을 밭에 들이부었다.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 밭을 자세히 보자 하니, 돌밭이다. 돌이 어찌나 많은지 발에 자꾸 차인다.
돌을 신나게 치우는데 손이 아팠다. 뒤를 돌아보니, H엄마만 호미를 들고 있었다. 뭐지?
왜 내겐 호미를 안 준거야. 호미가... 별거 아닌데,
여기 이 장소에서는 대단히 멋진 물건이었다.
갑자기 내 눈에 호미가 금빛으로 빛이 났다. 호미를 낚아채서 가져가면 H엄마가 나를 곧 잡겠지? 궁예 같은 H엄마는 내가 그 호미에 눈빛을 돌리는 순간 호미를 꽉 쥐고 있었다. 어림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곧 포기하고 돌을 주었다. 밭이 아니라 채석장에 온 게 아닐까?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다들 열심히 돌을 치우고 있는 상황 속에 평소 엉뚱한, 렙틸리언 외계인을 믿는 S엄마가 벌레를 큰 돌로 누르면서 키득키득 웃어댔다.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잠깐! S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면,
난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T엄마의 소개로 S엄마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 뒤로 S엄마는 우리 ○○동 모벤져스가 일원이 되었다. 수줍은 얼굴에 조용조용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말투, 자다 일어난 고현정 같은 모습에 교양이 철철 넘쳤다.
좀 더 친해지자 어느 날은 S엄마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S엄마는 포를 뜬 광어를 잔뜩 쌓아 놓고 튀기고 있었다.
분명 광어 튀김이었다!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S엄마는 요리도 수준급이었다.
정말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생선튀김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 뒤로도 S엄마는 도넛 같은 것도 손수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갈 때마다 튀김요리만 해주었다.
알고 보니 S엄마는 튀김을 계속 먹었을 때 우리의 몸이 어떤 일이 일어나나 궁금해서 튀김요리만 계속해봤다고 했다. 결국 콜레스테롤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S엄마가 어느 날은 모임에 소금을 가져왔다.
비싼 소금이라며 우리에게 조금씩 덜어주기도 하면서 자신은 꾸준히 섭취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실험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 소금을 꾸준히 먹으면 정말로 광고대로 건강해지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알고 보니 소금 가격이 정말로 사악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얘기인데, S엄마가 동네공원에서 그 비싼 소금을 땅에 뿌리고 걸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소금을 밟고 걸으면 건강해진다고 했다길래 실험을 해봤다나 뭐래나... 땅에 소금뿌리고 하는 어싱(Earthing)이라고 했다. 그런데 일반 소금도 아닌 그렇게 비싼 소금을 하다니!
S엄마의 실험정신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모임에서 S엄마가 팔뚝을 걷어서 몸에 부착하는 연속혈당측정기를 보여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난 당뇨가 있는지 물었는데, S엄마는 본인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다... 그럼 왜? 나는 의아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궁. 금. 해. 서...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혈당이 얼마만큼 오르는지, 그리고 연속혈당측정기와 그냥 손끝으로 채혈해서 하는 혈당측정기의 오차범위는 어떤지... 그것이 알고 싶다... 고 했다...
식사 후, 빵을 후식으로 먹으면 혈당스파이크가 일어난다는 사실과 연속혈당측정기와 일반혈당측정기는 어느 정도 오차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어느 날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근래에 S엄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열심히 해 체지방을 9킬로나 줄였다고 했다. 어느새 그녀의 롤모델은 70세에 바디빌딩 대회에 나간 할머니가 되었다.
이젠 얼마나 운동을 하면 근육이 얼마나 생기나 실험하는 건가?
첫인상과는 많이 다른 S엄마였다.
그 자다 일어난 예쁜 고현정 같은 얼굴에 문을 빼꼼히 열고 자신이 랩틸리언 외계인이라며 혀를 내두르며 배웅을 해주던 그때의 충격이란?
본인은 일단은 남이 한 말은 믿지 못하겠으니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S엄마... 그런데 랩틸리언은 어떻게 믿게 된 거지?
아쉽게도 과학자가 됐어야 하는 건데, 영양사가 되었다.
S엄마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렸을 때부터 음식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 봤다고 했다. 그때부터 과학자의 영혼이 들어왔었나부다. 예부터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래서 S엄마는 친정엄마한테 엄청 혼났다고 했다.
그런 호기심쟁이 S엄마가 이 밭에서 무언가 또 실험을 하고 있는 듯했다.
"언니, 이 벌레가 과연 이 돌의 무게를 이겨 낼 수 있을까요? 궁금하다... 히히" S엄마의 눈이 반짝였다.
아... S엄마는 이번엔 본인의 엄마가 아닌 누군가에게 혼이 나지 않을까?
그때, S엄마 앞에서 무얼 하나 가만히 지켜보던,
M엄마가 급히 돌을 치우더니,
"야, 벌레도 생명이야! 왜 이래?"
하면서 돌을 누르고 있는 S엄마의 손 등을 때렸다.
그리고 돌을 급히 치웠다.
저 멀리서 메아리처럼,
"혼내기만 하는 거예요. 때리지 않아요."
하는 Y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