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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보금자리

by bony

엠마는 레이를 따라 궁전 안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엠마는 일리아에 대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늘 새롭고 신기한 것에 목말라 있던 엠마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폴, 걸리버여행기, 오즈의 마법사, 나니아 연대기, 황금나침판,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등은 언제나 엠마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엠마 일상의 무미건조한 세계에서 다른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의 여행을 언제나 꿈꿨었다. 판타지 소설은 엠마에게 힘을 주었다. 판타지 소설뿐만 아니라 영웅이 나오는 마블영화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엠마가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서 그런 걸까? 그런데 꿈처럼 그런 일이 엠마에게도 다가온 것이다. 기사가 까마귀로 변신, 어쩜 반대일 수도 있겠다. 까마귀에서 기사로 변신한 건가? 내 마음을 읽는 마인드리더라니! 비현실적인 아이돌 같은 비주얼에 착한 여왕을 만나고... 이런 일들이 엠마의 인생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마블영화에 나오는 영웅처럼 그렇게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여왕에게 곧바로 충성을 맹세할 걸 그랬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도 엠마는 우선 장바구니에 갖고 싶은 것을 잔뜩 담아 놓는다. 욕심바구니다. 차고 넘친다. 그 욕심바구니의 것들을 다 샀다면 엠마는 벌써 빈털터리가 되었을 것이다. 실행의 보류. 엠마는 나름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충동구매로 이어지는 것들을 이렇게 차단한다.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엠마는 신중히 생각할 시간을 확보했다는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여왕은 엠마에게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러는데 그게 뭘까? 그냥 보통 스무 살의 여자일 뿐인데 말이다. 엠마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있었는지를.

동화작가가 되고는 싶지만 실상은 글을 잘 못 쓰고 그림도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쓴다는 게 영웅의 요건이었던가? 그것도 포함되지만 요새는 대부분 파괴력 있는 힘, 리더십, 초능력, 뛰어난 무술실력, 높은 아이큐 등등이 영웅들이 필요한 능력이지. 그럼 잘하지?

달리기? 초등학교 시절에 그렇게 달리기를 잘했었다. 공부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았다. 공부는 중간정도로 했다. 솔직히 공부를 전혀 안 한 것 치고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책 읽는 것만 좋아했다.

어느 날, 반 체육시간에 100미터 달리기를 했었다. 엠마와 반친구들 모두 엠마의 압도적인 일등을 예상했다.

반 친구인 단발머리, 공부를 정말 못했던 그 애,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언제 나타났는지 조용히 다가와 어깨에 다정히 손을 올리더니 말했다.

'네가 저 애를 좀 이겨줘! 네가 훨씬 나보다 잘 달리니까 이길 수 있을 거야! 난 쟤가 꼴 보기 싫거든.'

엠마는 어리둥절했었다.

'여자애들이란 이런 존재인가?

나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건가?

그런데 내가 그렇게 잘 달리나?'

한편으로는 엠마는 그런 부탁을 받은 것에 어깨가 으쓱했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좋은 거니까.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난 체육시간에 날아다녔어. 체육대회 때 높이뛰기도 전교 1등이었잖아. 심지어 연습도 안 했는데. 그래서 내가 좋아했던 짝사랑 반장 애는 체육시간이면 나를 영웅 보듯 했잖아. 걔는 공부만 해서 얼굴이 하했는데 나는 밖에서 뛰어놀아서 햇빛에 그을린 피부를 가졌었고.'

엠마가 생각을 하다 보니, 웃음이 나왔다.

'잘하는 게 운동이었구나. 나의 강점은 뛰어난 운동신경. 그런데 집에만 있었구나.'



"여기야! 네가 머무를 곳, 피곤할 텐데 좀 쉬도록 해. 그리고 넌 너무 말랐다. 좀 있으면 점심시간이니 많이 좀 먹어! 그래야 힘을 쓰지." 레이는 엠마에게 방을 안내하고는 나갔다.

'10살짜리 애한테 반말 들으니까 기분이 더럽네. 게다가 훈계까지 하고 가네. 그래, 그래도 나한테 도움이 되는 말이니까 새겨듣자. 점심시간에 많이 먹고 힘내야겠다.'

엠마의 방은 우주선 안에 있는 우주비행사들이나 쓸 법한 4평 남짓한 조그만 방이었다. 회색으로 온통 도배됐다.

'음.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네. 깔끔해! 이 궁전은 반전 매력이 있는 곳이야. 외관은 괴기하고 심난하게 보였는데 안은 회색투성이지만 아늑하고 편안하고. 여왕도 마찬가지잖아.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상냥하고.

어. 뭐야? 궁전 밖에는 창문이 보이지 않았는데 여기 들어오니 창문이 있네! 밖이 보여! 눈이 내린다. 포근한 솜털 같아. 예쁘다. 훗. 웃기네. 세상이 내 감정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게. 아~~함. 긴장이 풀리니 졸음이 마구 쏟아지네, 한 숨 자야겠다.'

엠마는 엄마의 유물이 든 꾸러미를 가슴에 한 번 품었다가 침대옆 탁자 서랍에 놓았다. 그리고 엠마는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엠마의 침이 입술근처의 얼굴선을 따라 흘렀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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