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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겨진 이안 2

by bony

이안은 아픈 손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훔쳤다. 이런 슬픈 감정은 이안의 머리를 갈라놓듯 아프게 했다.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밀려왔다. 이안은 서랍 속에서 타이레놀을 한 알 꺼내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엄마! 어릴 적 다리가 칼에 베여도 엄마를 지키고 싶었던 나에게 힘을 줘. 이번에는 누나를 지켜야 해. 불쌍한 누나를 찾게 도와줘! 제발!'

그리고는 숨을 크게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미칠듯한 감정을 안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이안은 누가 남매가 아니랄까 봐 엠마와 닮은 외모를 지녔다. 다부진 몸매와 큰 키, 서글서글한 눈매, 매력적인 오뚝한 코, 두툼한 입술, 중저음의 목소리, 다정한 성격은 이안을 이 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로 만들었다. 타로 실력도 실력이겠지만, 이안의 이런 외모도 장사가 잘되는 데에 한몫을 했다.


이안은 타로 테이블에 앉아서 타로를 펼쳤다. 집중을 해서 지금의 상황은 어떤 상황인지에 관한 질문을 했다. 그리고 신중히 무지개모양으로 펼쳐진 카드 속에서 타워카드, 텐소드카드 두 장을 뽑았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서 자포자기한 심정이야.'

'지금의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하네.'


'그럼, 그 원인은 뭔지 알아보자!' 이안은 다시 집중한 후, 카드를 아까와 마찬가지로 두 장을 뽑았다.

퀸완드카드, 쎄븐소드카드가 나왔다.

'음... 행동력이 좋은, 나보다 연상인 여자가 이기적인 생각을 한 것이 원인이 된다.'

'누굴까? 누나는 행동력이 좋지는 않으니까 여기의 퀸은 누나는 아니야. 그럼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이 일을 주도하는 사람은 여자네. 그럼 이 여자가 우리 누나를 데려간 걸까?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미래는 어떻게 될까?'이안은 카드를 두 장을 뽑았다.

그중 한 장은 '운명의 수레바퀴카드'이고 나머지 한 장은...'태양카드'였다.'

'이것은 운명이고 변화를 시킬 기회가 된다. 결과는 긍정적일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로부터 며칠 뒤, 엠마는 아직도 소식이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턱도 없다.

단지 이안은 타로카드의 긍정적인 결과에 조금은 안심할 뿐이다.

이안은 아빠의 장례를 홀로 조용히 치러드렸다. 아빠의 사인은 외상성 뇌출혈이었다. 눈이 많이 왔던 겨울,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가 발을 헛디뎌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고 했다. 아빠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뇌출혈이 나서 구급차에 실려 가던 중 돌아가셨다.


이안은 유품과 집을 정리하기 위해 아빠가 살았던 조그마한 산 밑자락에 있는 빌라를 찾아갔다.

9평짜리 콧구멍만 한 빌라였다. 현관문 밑에는 수도가 새고 있는지 물이 고여 있었다.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알 수 없어서 이안은 열쇠수리공을 불렀다.

문이 열렸다.

수 십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빠의 보금자리가 이안의 눈에 들어왔다.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집의 상태는 처참했다. 현관에 들어서니 조그마한 부엌이 먼저 보였다. 이안은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갔다. 신발장 위에는 조그만 봉투에 일반쓰레기가 남겨져 있었다. 부엌에는 음식을 먹은 흔적조차 없었고 냉장고는 오래된 양파장아찌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부엌 찬장을 열어보니 한 묶음의 국수가 콜라병에 꽂아있었다. 흔한 라면조차 없었다. 아빠는 식사를 거의 안 하신 것 같았다. 부엌 옆에 화장실로 들어가니 바닥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손바닥만 한 거실 위를 거의 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는 전등에는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그 밑에는 빨간 고무대야가 받쳐져 있었다. 아마 천장에서 물이 새어서 바닥까지 흘러 현관문까지 간 것 같았다. 오래된 빌라다 보니 당연한 일이다. 천장의 벽지는 물을 잔뜩 머금은 채로 찢어져서 달랑거렸다. 벽지 속에 나무판대기가 다 떨어져 나갔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았을까? 이안은 두려웠던 아빠에게서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벽면에는 노래방 코드가 적힌 포스터가 있었다.

'그래 내 기억 속의 아빠는 음치였지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셨어.'

이안은 고개를 숙여 텔레비전 밑에 서랍장을 열었다. 약봉지가 한가득 있었고, 근래에 동네구멍가게에서 받은 영수증이 눈에 띄었다.


검은콩두유 1개 1600원

참이슬 1병 1900원


'아빠는 안주가 두유였구나!'

이안은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안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안은 보고 말았다.

아빠의 수첩을!


엠마 2억 5천만 원

이안 2억 5천만 원

엠마엄마 3억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나는 그래도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아빠는 가족에게 주고 싶었다. 이 가상의 큰 금액을!

이안의 두 눈에서 뜨겁디 뜨거운 눈물이 조용히 떨어졌다. 이 조용한 눈물이 이안의 입 밖으로 음성이 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음성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안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빠의 수첩을 껴안고 고개를 숙였다. 이안도 모르게 통곡이 나왔다.

"아빠... 내가 미안해. 이렇게나 많은 약봉지를 들고 살았다니! 몸도 하나 성한 곳도 없었네. 집에 먹을 것도 하나 없고... 돈도 하나 없이 가난했는데, 무슨 이렇게나 많은 돈을 우리들에게 줄려고 다짐장을 써놓았어. 내가 도와줄걸. 빨리 용서해 줄걸!" 생각해 보면 아빠도 아빠대로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단지 술만 마시면 사람이 돌변했을 뿐이었다.


이안은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빠도 어릴적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고 했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폭력을 대물림받은 것이었다.


이안은 이제 그만 아빠를 용서하기로 했다.

이안은 이안의 기억 속에 온 가족이 행복했던 한 여름날을 서서히 끄집어내어 본다.

자기 전에 커다란 수박을 반으로 쪼개서 오순도순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던 그 밤을....

그 영상 속에 아빠를 영원히 가두고 이안은 잠시 행복하기로 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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