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이잉~~~ 귀에서 바람소리가 들렸다.
엠마는 기사의 어깨에 매달려 가는 중이다. 엠마의 눈이 조심스레 블라인드가 쳐지듯 열렸다.
마주하기도 싫은 소름 끼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엠마의 눈에는 내리는 눈이 보였다. 그리고 엠마의 축 처진 흔들리는 곱슬머리 위로 눈이 자석에 끌리듯 재빨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 도대체 어디로 나를 데려가는 걸까? 좀 전까지만 해도 따스한 낙엽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을이었는데, 벌써 눈이 장악한 겨울이 왔다고? 낙엽은 덮으면 따뜻해져, 하지만 눈은 덮으면 얼어버려. 눈은 안아주기 싫은 가시 돋친 성게 같은 결정체야. 지금 악몽을 꾸는 게 틀림없어, 그런데 아닌가 봐? 차갑고 몹시 추워. 아 서럽다, 이게 현실이라는 게... 감성은 일단 접어두자, 지금 당장 도망가야 해! 그런데 내가 여기서 뛰어서 도망가면 어디로 가야 하지?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이 놈이 나를 내려놓을 때 도망치는 거야. 엄마 나는 이제 어쩌지?'
엠마는 머릿속으로 빠져나갈 좋은 수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엠마는 자신이 이렇게나 대범했었나 하고 의아했다.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겁쟁이인데, 위기 상황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그런 아이였나? 엠마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이미 기사와 엠마는 다리를 건너 궁전입구에 다다랐다. 엠마는 더 이상 지체할 것 없이 본능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엠마는 팔 쪽에 온갖 신경을 집중하고는 팔꿈치로 있는 힘껏 기사의 목덜미를 세게 쳤다. 기사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 휘청거리며 엠마를 놓치고 말았다. 엠마는 빠르게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달리기라면 자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 제법인데? 그런데 어디를 가려고 해?"
기사들은 엠마가 저 멀리 뛰어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았다.
수수방관하듯 잠시 지켜보던 기사들 중 대장이 곁눈질로 한 명의 기사를 바라보며 잡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엠마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처음 맞이하는 차가운 일리아의 대기가 폐를 얼어붙게 하듯 맹렬히 들어왔다.
"헉헉헉"
입이 말라갔다. 그동안 집에서만 있었던 탓인지 그 좋던 달리기 실력도 떨어졌다. 엠마는 40미터도 채 못 갔는데도 불구하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코와 귀는 얼얼해서 감각을 잃은 듯했다. 또한 복숭아 같은 두 뺨은 바람에 수십 차례 맞아 빨갛게 굳어버렸고 입에서는 피맛까지 났다.
"오호~이것 참 재밌네? 그런데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멍청하긴! 여기는 우리 구역이야. 네가 뛰어봤자 벼룩이라고!"
엠마는 기사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짐을 느꼈다.
"다다다닥~~~"
기사의 자신만만한 소리에 엠마는 더욱 긴장이 되었다.
기사는 정말로 잘 달렸다. 엠마는 기사와 자신과의 간격이 빠르게 좁혀짐을 느꼈다.
곧 엠마의 머리 뒤에서 기사의 숨소리마저 들렸다.
"망했다. 곧 잡히겠어."
엠마가 다리를 막 건넜을 때 엠마는 어미고양이에게 잡힌 새끼고양이처럼 기사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용쓴다! 하하하하!"
궁전 앞은 불행히도 허허벌판이다. 길 옆에는 수북이 눈이 쌓여있었다.
엠마가 여기서 도망갔더라도 엠마는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추위에 얼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아님, 짐승의 밥이 됐거나!
기사는 엠마의 목덜미를 잡은 채 몇 걸음 가다가 엠마의 손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그리고 궁전 앞을 향해 등을 밀쳤다.
"어서 앞으로가!"
멀리서 지켜보던 대장 기사가 두 손을 입주위에 가져다 대고 소리쳤다.
"야! 날아가서 잡으면 더 편할 것을 힘들게 왜 달렸냐?"
"날갯짓보다는 뜀박질이 더 좋아서요!"
"아, 저 자식은 참 별나다니까!"
"빨리 와! 아무튼 잘했어!"
"그런데, 봤어? 쟤 달릴 때 다리가 안보이게 달리던데! 재밌는 구경이었어. 이 일 한 지 오랜만에 도망가는 애를 만났네. 참 드문 일이야! "
잠시 후, 코니 기사단과 다시 합류한 엠마는 말없이 기사들과 같이 궁전에 들어갔다.
궁전은 산꼭대기 절벽 끝에 위치해 있는데, 겉보기에도 을씨년스럽다. 어디 하나 따뜻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궁전 꼭대기에는 깃발이 꽂혀있는데 까마귀와 뱀이 엉켜져 그려져 있었다. 일리아의 국기이다. 누가 봐도 눈 내리는 지금의 기후와 궁전은 찰떡궁합이었다. 그리고 궁전 안은 전부 회색으로
바닥, 벽, 천장 모두가 광택이 나는 대리석이다. 창문은 도대체 보이지가 않았다. 감옥 같은 궁전이라니! 겉이나 안이나 정이 안 가기는 매 한 가지였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가 여기에 잡혀 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되겠지! 기사들이 뭐라고 나에 대해서 짓 거리는데, 그 말이 사실이면 난 어쩌면 여왕을 위한 대단한 임무를 하러 오게 된 것 일 수도 있어! 이왕 벌어진 일이니, 낯선 곳이지만 한 번 적응해 보자! 설마 날 죽이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어쩌면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
엠마는 생각했다.
"맞아! 여왕님이 널 죽이지는 않아!"
옆에서 한 10살가량 된 제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와 말했다. 그 눈은 별처럼 반짝거렸고 총명한 빛이 돌았다. 엠마는 깜짝 놀랐다. 내 생각을 혹시 읽은 거야!
"뭐 그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어! 반가워! 나는 레이라고 해. 우리 코니 기사단들이 좀 거칠었지.
미안! 하지만 억지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넌 그냥 그 집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았을 거야! 앞으로의 너의 미래는 히키코모리였으니까! 우리한테 감사해야 할 걸. 말이 길어졌네. 자, 여왕님이 아까부터 계속 널 기다리고 계셔! 날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