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롭게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시작이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나와 입국 수속 대기를 하면서 기억에 남던 건 둥근 천장이다.
공항 와이파이 연결 시도가 실패할 때마다 뻐근한 목을 돌리며 이따금씩 올려다봤기 때문이다.
입국 심사부스에서는 최대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려 했다.
그들의 업무 매뉴얼에는 수속 대상자를 노려봐야 한다는 내용이 있을 것 같다.
나름 격동의 중2 시절 수련회에서 착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반에서 혼자 소지품 수색을 면제받은 적이 있다.
크면서 인상이 조금 (많이) 오염되긴 했지만 이곳에서는 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러시아 땅에 들여도 무방한 선한 외국인으로 판정되었다.
모든 문을 통과해 공항 도착장소로 가방을 돌돌 끌고 나갔다.
와이파이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려던 찰나 익숙한 이름이 적힌 팻말이 보였다.
처음 보는 곳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고 있는 내 영어 이름이 낯설었다.
어느 경로를 통해서 전달받았는지 운전기사님과 젊은이 하나가 서 있었다.
기사님은 러시안 아저씨, 젊은이는 중국 학생회 대표쯤 되는 것 같았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라 짧은 인사말만 던지고 빙긋 마주 웃을 뿐이었다.
밖으로 나가자 해 떨어지기 전 밝은 오후 6시였다.
시차 때문에 여전히 개천절이었다.
겨울옷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챙기려고 좀 껴입긴 했지만 10월 초 모스크바의 공기는 그다지 날카롭지 않았다.
기사님 도움으로 가방을 싣고 자리에 앉았다.
이 차를 타고 갈 동행이 다른 항공편으로 올 예정인지, 혼자 차 안에서 얼마간 대기를 했다.
공항이라서 그렇겠지만 하늘이 참 크게 열려있는 곳이었다.
제시간에 도착했고 짐도 잘 찾았고 나를 어디론가로 데려가주실 분들도 만났다.
* 아에로플로트가 수하물 분실로 악명이 높다던 당시 소문은 아직 믿을 수 없다.
너무나도 순조롭다.
이 차를 타고 어느 기숙사로 향하는지는 여전히 모르는 상태였지만 평온했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으니 어디로 가든 별 문제가 있겠나 싶었다.
*당시 나름 찾아본 바에 따르면 기숙사 건물은 크게 게제(ГЗ), 다스(ДАС) 정도였다. 전자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МГУ) 본관이라 외관이 화려하고 후자는 많이 낙후된 기숙사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어둑 해질 때쯤, 상당히 화려한 빨간 코트와 보라색 코트를 입은 아가씨들이 차에 올랐다.
픽업 나왔던 젊은이를 포함한 셋은 중국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빨간 코트 아가씨는 붙임성 좋게 웃으며 영어로 ‘하이!’ 인사했다.
오색 별가루가 주변을 한번 휙 돌고 사라지는 듯한 발랄함이었다.
마주 웃으며 손을 어색하게 흔들고 있을 때, 아저씨는 시동을 걸고 출발하셨다.
곧 완전히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러다 굉장히 높고 번쩍이는 건물 여러 개가 점점 커지며 앞으로 다가오더니 왼쪽으로 빗겨 지나갔다.
2년 전 지나가고 있었던 밴쿠버 시티를 떠올렸다.
그 건물들이 있던 동네가 모스크바 시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중이었다.
승합차는 계속 달렸다.
밤이라 시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낮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2차선 도로만 있는 조용한 거주 지역인 듯했다.
여기도 그냥 지나가겠군, 생각하던 찰나 차가 방향을 홱 틀더니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인지 아가씨들이 분주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그곳이 그들을 내려줄 경유지인줄 알았다.
잘 가라는 손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픽업 젊은이가 이쪽을 보더니 내리라고 손짓했다.
기숙사처럼 생긴 것은 보이지 않아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차에서 내려 고개를 돌리자 과연 눈앞에 커다란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가 있었다.
제대로 도착했다.
다스(ДАС)에.
Дом Аспиранта и Стажёра(ДАС) : 대학원생, 수습인력용 기숙사
1965-1971년에 건설된 이 기숙사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 이렇게 생겼다.
왼쪽 > 1층에는 작은 슈퍼마켓이 있고 지하감옥처럼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면 세탁소가 있었다. 세탁소에서는 세탁과 건조 모두 가능했는데, 성깔 있고 꼬장꼬장한 흑발 스모키 아가씨가 상주했다.
오른쪽 < 1층에는 외부인 초청 허가신청소와 기숙사비 납부 사무실, 그리고 지하에는 수영장이 있는 듯했다.
가운데 - 양쪽 두 동을 잇는 통로로 기숙사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들어가서 바로 맞은편에 학생 식당이 꽤 넓은 공간에 자리해 있었다. 2층에는 미용실과 문구/잡화점, 독서실이 있었다.
유명한 영화에도 촬영지로 등장했었다.
미국 크리스마스에 '나 홀로 집에'가 있으면 러시아 새해에는 '운명의 아이러니(Ирония судьбы, или С лёгким паром!)가 있다.
이 사실은 입소일 며칠 뒤 기숙사에서 첫인사를 나눈 이후, 꽤 오래 인연을 이어온 친구가 알려줬다.
오래된 건 알았지만 늘 다니던 곳을 옛날 영화에서 보는 것은 색다른 기분을 선사했다.
운명의 아이러니인지, 이 날 첫 도착으로부터 약 7년 반 뒤에 저 동네로 다시 이사가게 되었고 그 친구와 동거하게 되었다.
입구 쪽으로 안내하던 픽업맨은 기숙사에 아는 한국인이 있다며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입구에는 코카서스 지역 출신으로 추정되는 경비원들이 통행증(пропуск) 확인을 하며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오늘 도착했다는 말을 전달한 것 같았는데, 곧 임시 통행증을 받을 수 있었다.
네 명이 타면 이미 어깨와 등이 닿는 굉장히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갔다.
데리고 간 곳은 층별로 있는 층장의 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90년대 스타일의 하얀색 웨딩케이크를 연상케 했다.
사방이 하얀 벽지에 자잘한 장식들, 쌓인 서류들.
Дежурная(제쥬르나야)라고 부르는 층장 아주머니는 통통한 손으로 서류에 이것저것 휘갈기며 체크인을 하고 계셨다.
제쥬르나야의 굉장히 높고 진한 아이라인 아래로 입실자들을 바라보는 푸른 눈이 번뜩였다.
뒤쪽 한편에는 각설탕 그릇 옆에 초코파이 몇 개가 쌓여있었다.
러시아에서 초코파이를 즐긴다는 말이 단지 국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층장의 안내로 배정된 호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양 옆으로 화장실과 욕실이 배치된 꽤 넓은 현관공간이 나왔다.
맞은편에는 방으로 통하는 문 두 개가 있었는데, 각각 2인실로 4명이서 화장실과 욕실을 사용하는 구조였다.
나는 오른쪽 방이었고, 첫 룸메이트는 자그마한 일본 학생이었다.
사람 좋게 웃던 그는 Добрый 브랜드의 파인애플 주스를 권했다.
눈과 귀를 통해 새로운 정보들이 너무 많이 뇌로 들어온 터라, 일단 쉬기로 했다.
다음날에는 유심과 이것저것 생존에 필요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매트리스 스프링이 안에서 삐져나왔는지 등을 쿡쿡 찔러댔지만 무리 없이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