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묵시록
급하게 출장이 잡힌 바람에 이제야 마무리해서 발행하는 지난주 글
코로나 창궐 때문에 상당 기간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었다.
* 역병이 전 세계의 발을 묶고 백신 접종 여부가 일종의 '자격'을 부여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시절이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한국 땅에 발을 들이니 몇몇 부분에서 이질감이 크게 다가왔다.
역문화충격(逆文化衝擊, Reverse culture shock, обратный культурный шок)을 받은 것이다.
한국은 이랬었지! 하고 그리운 곳으로 돌아온 자처럼 감탄하는가 하면,
한국은 왜 이러지? 하고 이방인 입장으로 의문을 갖기도 했다.
생각나는 대로 적다보니 많아서 나눠야 했다.
빠뜨린 게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 교통편을 써봤다.
새롭게 보였던 한국의 모습들이다.
1. 신호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사람이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비단 러시아만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횡단보도 앞에 사람이 그냥 서있기만해도 달려오던 차들은 일단 속도를 줄이고 멈춰야 한다.
차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 신호없는 횡단보도는 하얀색 몇 줄 칠한 일반 도로와 다름 없다.
사람이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하나 보내면 뒤에 오던 차들도 줄지어 지나간다.
건너려고 하면 굳이 먼저 가겠다고 전속력으로 밟는다.
뉴스에는 안 나오는 사고가 꽤 많을 것 같다.
2. 우회전 신호가 없다.
한국에 와서 모퉁이 옆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할 때 광란의 코너링을 흔히 접할 수 있었다.
‘우회전 시 일단 멈춤’도 비교적 최근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 사실 우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게 갑갑하긴 하다.
3. 버스가 정류장을 그냥 지나친다.
정류장마다 정지하고 문을 여닫는 버스에 완전히 익숙해졌었다.
그래서 한국 버스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잠시 믿었다.
휑 바람을 일으키고 지나가서 멀어지는 버스의 궁둥짝을 멍하게 지켜보다가, 곧 택시처럼 손을 들고 내가 탈 버스를 알아서 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4. 하차벨을 누르지 않으면 세워주지 않는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버스는 정류장마다 정지하고 문을 열지 않는다.
두세번 정도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고나서부터 완벽히 다시 적응하고 벨을 누르게 되었다.
교통편은 적어놓고보니 얼마되지 않는다.
적응하지 않으면 바로 불편해지기 때문에(운이 나쁠 경우 사망 엔딩) 금방 지나간 충격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가장 많이 써내려간 주제는 '식사'이다.
아마도 다음 편은 거기에 대한 글이 올라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