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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역문화충격 시리즈는 어디가 더 좋고 나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느낀 부분을 소제목으로 구성했다.)
1. 한국은 확실한 커피 문화권
차 문화가 강한 러시아/카자흐스탄에도 카페가 많다.
모스크바 지하철역에는 즉석에서 원두를 갈아 추출해주는 자판기도 있고 다양한 커피 맛을 체험할 수 있는 로스터리도 여기저기 생겼다.
그러나 특별한 곳을 찾아가지 않는 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향긋한 기호식품 소비'보다는 '신체에 카페인을 넣는 행위'에 더 가까웠다.
식후에는 차 마실래? 라는 질문이 당연하게 뒤따른다.
찬장 한 쪽에는 티백이 가득하며, 스페셜티 원두보다는 다차*에서 직접 키운 차를 말려 선물하는 그림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 다차(дача): 교외 별장. 주말이면 다차에 머무르며 텃밭을 돌보거나 샤슬릭을 굽고 사우나를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보통 식사가 커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안 그래도 많았던 카페가 더 많아진 것을 체감했는데, 심지어 시골 저 안쪽까지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로스터리가 들어서 있다.
탄 맛이나 쓴 맛 나는 커피를 만날 가능성도 현저히 낮아 어딜가도 평균 이상인 느낌이다.
많은 카페가 달달한 크림커피를 시그니처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믹스커피의 상위호환 제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 카페 커스텀이 한정적이다.
한때 자주 주문하던 메뉴는 딸기시럽 넣은 카푸치노였다.
여느때처럼 긴 산책을 하다 카페 프랜차이즈인 쇼콜라드니짜(Шоколадница)에 들어갔을 때 친구 다샤가 이렇게 먹어보라며 추천해준 것이다.
한국에 오랜만에 갔을 때도 같은 걸로 주문해봤다.
메뉴판에 딸기 시럽이 들어갈 법한 음료들이 있어 무리한 주문도 아니었고, 시럽값은 원래 추가되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따뜻한 카푸치노에 딸기시럽 추가해주세요."
카운터 직원은 방금 주문한 게 뭐냐고 되묻더니 금방 난색을 표했다.
그런 메뉴는 원래 없거니와 딸기 시럽을 별도로 추가할 수도 없다고 했다.
민트시럽, 라즈베리 시럽같은 옵션을 어디에 추가하더라도 쿨하게 제공하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다.
되려 살짝 무안해진채 메뉴판에 있던 걸로 다시 선택했다.
다양한 커스텀을 내세우는 카페에서도 그런 시럽 변경은 불가능했다.
맥도날드(전쟁 때문에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에서도 뜨거운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넣어달라고 주문할 수 있었는데, 한국 맥도날드는 어떤지 모르겠다.
3. 시중 대체유 옵션이 적다.
모스크바에는 저지방, 무지방, 락토프리 외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체유 종류가 더 많았다.
한동안 우유를 아몬드유로 변경한 라떼에 빠져있었고,
헤이즐넛유도 특유의 달콤고소한 견과류 맛(페레로로쉐 초콜릿)이 마음에 들어 자주 주문했다.
마트에서도 온갖 식물을 다 쥐어짜서 우유 대용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https://bite.ru/catalog/?_type=rastitelnoe-moloko
* 호두, 잣, 캐슈넛, 아몬드, 코코넛, 마카다미아, 메밀, 귀리, 콩, 헤이즐넛 다 짜내는 중...
* 일단 두유 맛은 한국이 월등하다.
가끔 마트에서 위 브랜드 상품들이 잔뜩 진열된 것을 보면 한글처럼 보이기도 했다.
4. 세트나 여러 가지 단품을 주문해서 나눠먹는 경우가 많다.
해외 체류 기간 동안 위 사실을 잊고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애초에 아예 나눠먹으려고 주문하는 피자나 롤같은 음식이 아니고서야, 각자 원하는 음식을 주문해서 자신의 몫을 먹는다.
예를 들어 4명이 모두 돈까스를 먹을 수도 있고, 쫄면과 만두와 돈까스와 떡볶이를 각자 고를 경우에도 기본적으로는 음식을 나누지 않는다.
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게 그냥 당연했고, 나눠주고 싶으면 얼마든지 나눠줄 수 있다.
* 계산할 때도 먹은 가격만큼 정확하게 지불한다. 토스처럼 온라인 송금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나중에 정산해서 보내주기도 한다.
한국에 와서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이탈리아 식당에 갔다.
누군가 봉골레 파스타가 먹고싶다길래 "나도"라고 하면서 같은 것을 골랐는데, 정작 그는 봉골레 파스타가 아닌 다른 메뉴를 선택했다.
순간 의아했으나 곧 서빙된 접시들이 식탁 가운데로 모이는 것을 보고 왜 그랬는지 깨달았다.
아예 누가 어떤 것을 주문했는지 묻지 않고 가운데로 음식을 놓아주는 식당도 종종 있었다.
다양한 메뉴를 즐기기에는 확실히 이만한 방법이 없다.
5. 맛있는 크림 디저트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순간 크림도넛을 옆에 두고 있다가 한국은 크림이 들어간 디저트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딸기생크림케이크의 경우 홍대의 모 카페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심지어 더 맛있어졌다.
러시아에서 딸케 혹은 부드러운 케이크를 찾아다니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던 나날을 잊을 뻔 했다.
* 나폴레옹이나 메도빅 같은 현지 케이크나 다른 디저트들은 예외다. 특히 나폴레옹, 메도빅은 최애에 속한다.
화려한 케이크 가게는 조금만 찾아보면 있다.
맛이 굉장히 뻑뻑하거나 극히 달기만 할 뿐이다.
그나마 찾은 카페 하나는 폐업했고,
이후 찾은 다른 카페는 딸기크림케이크 메뉴를 없애고 가격을 확 올려버렸다.
https://now.yumbaker.ru/product-category/cake/
* 여담: 의외로 허니브레드가 러시아인 취향을 저격하는 장면들을 목격했다.
마지막으로 식당이나 카페와 관련된 내용은 아닌데, 한국에 오니 그 많던 라즈베리가 없다.
러시아에서는 어딜가도 라즈베리, 라즈베리(말리나: малина)였다.
라즈베리 케이크, 라즈베리 라떼, 라즈베리 주스, 라즈베리 시럽, 라즈베리 타르트, 라즈베리 잼, 라즈베리 웨하스, 라즈베리 초코파이, 라즈베리 퓨레, 라즈베리 무스, 라즈베리 아이스크림, 라즈베리 치즈바, 건조 라즈베리 초콜릿, 라즈베리 프로틴 쉐이크, 라즈베리 차, 라즈베리 쿠키, 라즈베리 치즈케이크, 라즈베리 파이, 라즈베리 까샤(죽), 라즈베리 소스를 얹은 고기 구이, 라즈베리 잎차, 라즈베리 젤리........
러시아 연방 국영 라즈베리 농장이라도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