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 독서토론 진행자의 기록 ―
3달에 두 번, 나는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
손에는 정성껏 준비한 질문지와 읽은 책 한 권.
처음 독서토론 재능기부를 시작한 건 1년 전이었다. 책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즐기는 마음 하나로 ‘진행자’라는 낯선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방식은 단순하다.
선정된 책을 읽고, 질문을 만들고, 2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참여자들의 해석 속에서 내가 놓쳤던 문장들을 발견하는 순간은 마치 보물찾기 같다.
하지만 즐거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강사라는 본업보다 독서토론 진행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부담도 컸다. 시간을 내어 찾아온 분들께 실망을 주고 싶지 않고, 그들의 소중한 2시간을 허투루 쓰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참여자들의 모습은 정말 다양하다.
토론이 산으로 간 순간들이 있었다.
책 속 인물의 선택을 두고 이야기하던 중, 한 분이 갑자기 말했다.
“저는 이 대목을 보는데, 지난 대선 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다음부터 토론장은 순식간에 정치 토크장이 되었다.
“그 후보는 말이죠—”
“아니, 그건 다 언론 탓이라니까요—”
나는 식은땀이 흘렀다. 진행자가 아니라 중재자가 되어야 했던 순간. 책 이야기는 이미 사라지고, 참여자들의 목소리만 커져갔다.
또 한 번은, 책 속 사랑과 집착의 차이를 주제로 질문을 던졌는데, 어떤 분이 갑자기 연애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대학 때 만난 남자친구 얘긴데요…”
무려 5분간 이어진 파란만장한 연애담.
참여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고, 나는 속으로만 웃음을 참았다.. ‘이건 독서토론이 아니라 연애상담인데…’
그런 순간들 덕분에 깨달았다. 완벽한 독서토론이란 없다는 것을. 계획한 질문을 다 못할 때도 있고, 전혀 예상치 못한 길로 흘러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특별하다.
말 많은 분은 분위기를 살리고, 조용한 분은 한마디로 흐름을 바꾼다. 심지어 정치 이야기나 연애담 속에서도 의외의 통찰이 숨어 있기도 하다.
지금도 여전히 떨린다. 하지만 그 떨림 속에는 기대도 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방향으로 산을 탈까? 어떤 질문이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릴까?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진행자가 될 수 있을까?
독서토론이 즐거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예측할 수 없기에, 매번 새롭기에, 사람과 이야기가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에 즐겁다.
오늘도 나는 책 한 권과 질문지를 챙겨 들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이번엔 산으로 가지 말고, 책으로만 가자!” 다짐하면서도, 속으론 은근히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