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참 신기하다. 때로는 우리가 거부한 것이 훗날 가장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한다.
내 나이 38살, 당시 43살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첫 번째 만남이 아니었다.
5년 전, 33살의 나는 이미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동료 선생님이 건네준 사진 속 남자는 너무도 '아저씨' 같았다.
늙다리 아저씨 같은 모습, 홀아비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그 모습에 나는 당당히 배짱을 부렸다.
"아니에요, 저는 패스할게요."
그래도 선한 눈매만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선생님께 그를 넘겨버렸다. 마치 원치 않는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듯이 말이다.
그 후 나는 줄기차게 소개팅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선, 맞선, 소개팅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그때의 나는 콧대가 하늘 높은 줄도 몰랐고, 만나는 사람들이 다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나한테 맞지 않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고, 나는 38살이 되어 있었다.
생일을 얼마 앞두고,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다. 부끄러웠지만 동료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그 분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
어쩌면 이미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묵직했다.
다행히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어찌저찌 연락이 되어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5년 전 사진에서 느꼈던 투박함과는 달랐다.
절제 있고 차분한 음성이 내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몇 번의 통화 끝에 우리는 용산 독립기념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처음 만남 날, 나는 또 40분이나 지각을 했다.
급한 성격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늦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 긴장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싫은 기색 한 번 보이지 않고 나를 맞아줬다.
"괜찮아요, 혹시 오시다가 사고난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렇게 만나니 다행입니다."
그 순간 알았다. 이 사람은 정말 착한 남자구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내 덕분에, 아니 정확히는 내 대신에 소개받은 다른 선생님들과 몇 번 만났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직업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게 높았다.
교육 현장의 어려움이나 보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고개 끄덕임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 모습이 묘하게 귀여웠다.
지금 우리는 결혼 6년 차다.
그때 그랬던 선한 눈매가 이제는 뱁새 눈이 되어 나를 노려본다.
"또 늦었네", "설거지 언제 할 거야?", "양말 좀 제자리에 놔"
매일 같은 잔소리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그 뱉새 같은 눈매 속에서 여전히 선함을 발견한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깨달았던 진실을 이제는 매일 확인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인연은 미리 정해진 거야."
나는 이제 그 말을 믿는다.
33살의 교만했던 내가 거부했던 그 사람이, 38살의 겸손해진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는 것.
그리고 그때의 거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거라는 것을.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노총각을 구해준 착한 우렁각시라고?
글쎄, 오히려 고집불통 아가씨를 구해준 것은 그 착한 노총각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뱁새 눈으로 나를 째려보는 그에게, 오늘도 조용히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