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시어머니의 침묵

by 연목

시어머니는 내게 언제나 호랑이 같은 분이었다.

목소리는 우렁찼고, 말투는 직설적이었으며, 눈빛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막내아들 앞에서의 시어머니는 전혀 달랐다.

호랑이 같은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순한 양처럼, 때로는 귀여운 토끼처럼 사근사근 조근조근 말씀하셨다.

그 수다를 들으며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왔음을 실감했다.


처음엔 그 수다가 따뜻했다. 시시콜콜한 일상, 옛날 이야기, 동네 소식까지 끝없이 이어졌지만, 그 속에는 삶의 온기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온기는 때로 무게로 다가왔다.

같은 이야기의 반복, 때로는 나를 향한 투박한 충고와 지적들이 서서히 내 마음을 지치게 했다.


코로나 19로 직업을 잃어 막막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꿈꾸고 있던 나에게, 시어머니는 "여자는 집안 살림만 잘하고 애만 잘 키우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작아졌다. 내가 품었던 꿈과 목표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모처럼 시간을 내어 좋은 식당에 모시고 가서 정성스럽게 음식을 대접해드리고 나오는 길이었다.

나름대로 효도하고 있다는 뿌듯함에 젖어 있던 나에게, "옆집 새댁이 음식을 못해서 반찬값이 10만원이 넘는다더라"는 말씀이 떨어졌다.

그 순간 나는 몹시 찔렸다. 나 역시 음식 솜씨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 대접도, 결국은 내 부족함을 지적받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호랑이 시어머니와 며느리.png


결국 속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남편이 어머니께 무슨 말씀을 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어머니는 나와 대화는 점점 줄어 갔다.

그때 깨달았다. 지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침묵이라는 것을.


시어머니의 침묵은 두꺼운 유리벽 같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차갑고 단단해 닿을 수 없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무수히 질문했다.

‘혹시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걸까?’, ‘어머니도 상처받으신 걸까?’, ‘진짜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대답 없는 벽 앞에서 나는 홀로 생각하고, 홀로 짐작했다.


시간이 흘러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는 남지 않은 목소리 대신, 손때 묻은 편지들이 가끔 내 마음을 울린다.

“건강해라”, “아이 잘 키운다”, “고맙다.” 짧은 문장 속에 담긴 마음은 서툴지만 따뜻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호랑이 같던 시어머니도 사실은 표현이 서툰 분이었다는 것을.


돌아보면 그 침묵은 분노가 아니라 체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어머니도 속으로 서운해하셨을 것이다.

나는 칭찬만 바라는 모자란 며늘아기였고, 어머니는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한 호랑이였다.


무엇보다 후회되는 것은, 어머니도 나도 단 한 번도 마음을 열고 직접적으로 대화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남편이나 시누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했을 뿐, 정작 서로의 속마음은 외면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작은 용기 하나가 없어서, 우리는 끝내 벽을 허물지 못했다.


이제 나도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다. 아이에게 건네는 말이 잔소리로 들릴까, 조언이 상처가 될까 두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시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의 서툰 사랑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말씀드리고 싶다.
“어머니, 그때는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침묵이 사랑이었다는 것을요. 감사합니다. 저를 며느리로, 가족으로 받아주셔서.”

호랑이 같던 시어머니의 침묵은 이제 그리운 울림이 되었다.

그 속에 담긴 사랑을 나는 늦게나마 읽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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