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저승사자

by 연목

나는 늘 식물과 인연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봉선화 관찰 일기를 쓰면, 내 화분만 일찍 시들었다.

친구 집에서 얻어온 다육이도, 생일 선물로 받은 선인장도, 내 손에만 오면 며칠 못 버티고 고개를 떨궜다.

분갈이를 하면 더 빨리 죽고, 물을 주면 썩어버렸다.


남들 집 거실에는 몬스테라 잎이 제멋대로 뻗고, 창가마다 제라늄이 계절을 따라 꽃을 피우는데, 우리 집 화분은 늘 ‘장례식장 모드’였다.


“엄마, 또 죽었어.”
아이가 툭 내뱉었고, 남편은 지나가다 한마디를 보탰다.
“당신은 완전 식물 저승사자야.”


억울했다.

처음엔 집 탓을 했다.

볕이 안 들고 습해서 그렇다고.
그런데 새로 이사한 집은 햇살 쨍쨍, 바람 솔솔.
환경은 완벽한데, 시누이가 준 화초도 나흘 만에 쓰러졌다.


나는 검색창에 매달렸다.
‘초보도 키울 수 있는 식물’
‘죽지 않는 식물’
…다 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어느 날은 마트에 갔다가 남편과 아이가 괴마옥 파인애플 선인장을 하나 집어 들었다.
“엄마, 이건 나하고 아빠가 돌볼게. 엄마는 그냥 지켜보기만 해.”

나는 서운했다.
“내가 못 키운다고 둘이 챙기겠단 거야?”
남편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너무 잘하려고 해서 문제야. 그냥 가끔만 도와주면 돼.”

그 말이 콕 박혔다.


돌아보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화분 앞을 서성이며 물을 줬다.

그러다 바빠지면 며칠씩 방치했다.

너무 뜨겁다가도, 금세 차가워지는 나.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보살핀다는 핑계로, 나는 늘 조급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은 채 애정을 쏟아붓다가, 또 금세 외면해버렸다.


하지만 식물은 달랐다.
그저 햇살을 받고, 제때 물을 마시며,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간다.


사람도,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더 많이’가 아니라, ‘적당히’여야 한다.
오히려 거리를 둘 때 더 건강하게 자란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에서, 오래도록 지켜보자.”


언젠가 내 화분에서도 싱그러운 새 잎이 돋아날 것이다.
그때 나는 더 이상 ‘저승사자’가 아니라, 기다려주는 ‘지킴이’로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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