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에게 그림은 전부였다.
밥을 거르고 그림을 그려도 행복했던 그 시절, 연필로 종이 위에 선을 긋는 순간만큼은 세상 그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나를 못마땅해 하셨다.
"맨날 가시나 대가리만 그리고 있다"며 내가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들을 폄하하고 흠집내기 일쑤였다.
그 말들은 어린 내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고, 나는 점차 꿈을 숨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집에는 나와는 정반대인 여동생이 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던 여동생은 즉흥적이고 당당했다.
우유부단하고 행동이 굼뜬 나와 달리, 여동생은 자신의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아이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무용을 시켜주지 않는다며 가출까지 했던 여동생의 모습은, 엄마가 무서워 몰래몰래 그림을 그리던 나에게는 경이로운 용기로 보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여동생이 미웠다.
집안 살림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나는 그림을 포기하고 공부에 매진해야 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동생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재수까지 했다. 여동생이 3년 내내 연습한 똑같은 바이올린 연주곡을 들으며 '형편없는 연주'라고 속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질투와 원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미대에 가지 못한 것이 내내 한으로 남아, 마흔 살이 되어서야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입시소묘를 배우며 다시 꿈을 키워보려 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생각보다 나는 너무 못했다.
마음만 급해 선이 제대로 쌓이지 않으니 그림은 예쁘지 않았고, 결국 질려버렸다.
사이버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3학년에 편입까지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줍잖은 재능만 있었을 뿐, 이것을 직업이나 전공으로 삼을 만한 능력은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엄마의 판단은 정확했다.
만약 그때 그림의 길을 택했다면 나는 실패와 시련의 긴 터널을 지나 지금보다 더 먼 길을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시련과 실패의 과정도 겪어보고 싶었다.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할 기회가 있었을 테니까.
그랬더라면 마흔에 한이 맺혀 그림을 찾아 헤매며 살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마흔다섯 살이 된 지금,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엇을 못하는지는 확실히 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재능은 어쩌면 결과보다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늦었어도, 그 여정 자체가 의미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걸어가는 것.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 그 과정을 아름답고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 아닐까.
마흔다섯 살에 깨달은 나만의 작은 재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