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살의 나는 전형적인 뺑덕어멈이다.
어디서든 먼저 말을 걸고, 아이 생일파티를 위해 온 동네를 뒤져가며 케이크를 주문하고, 수업 하나를 위해서라도 열두 번 전화를 건다.
반면 네 살배기 딸아이는 밖에만 나가면 꿀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하다.
내가 공들여 준비한 생일파티에서도, 특별히 신청한 체험수업에서도 입을 꾹 다물고 엄마 뒤에만 숨어 있다.
"민주야, 선생님께 인사드려야지. 안녕하세요 하자."
내가 등을 살짝 밀어도 아이는 고개만 푹 숙이고 말이 없다.
“뭐하니? 어서 빨리 말을 해야지. 선생님 기다리시잖아.” 이내 아이를 채근하고 만다.
목소리에 짜증이 한 웅큼 담은 채로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저 엄마 왜 저래?' '아이가 부끄러워하는데.' 얼굴이 화끈거린다. 집에 와서는 결국 폭발한다.
"엄마가 얼마나 준비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해?"
아이는 더 움츠러들고, 나는 더 답답해진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우리는 매일 전쟁을 치른다.
나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이는 내 노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 역시 엄마 뒤에 숨어 있기 일쑤였다.
어른들이 말을 걸면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때마다 우리 어머니는 내 등을 쿡쿡 찌르며 "인사해라, 대답해라" 하셨다. 나는 그런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왜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사 어머니의 마음을 안다.
아이가 사회에서 위축되지 않기를,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는 마음.
그 간절함이 때로는 조급함이 되고, 조급함이 아이를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는 것도 이제야 깨닫는다.
어젯밤, 잠든 딸아이의 손을 들여다봤다.
내 손과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발가락도 마찬가지다.
얼굴은 아빠를 닮고, 성격도 전혀 다르지만, 유독 손가락과 발가락만은 나를 쏙 빼닮았다.
그 작은 손가락들을 보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다르게 보여도, 우리는 모녀구나.
나의 적극성과 아이의 소극성. 나의 외향성과 아이의 내향성. 이 모든 차이가 갈등의 씨앗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우리를 완성시키는 조각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에게 용기를, 아이는 나에게 신중함을 가르쳐주는 것일지도.
오늘부터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려 한다.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기다려주고, 숨고 싶어하면 일단 숨게 해주자.
대신 집에서는 실컷 떠들 수 있도록,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자.
내가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셨으면 했던 것처럼.
그렇다고 견원지간같은 모녀전쟁이 단번에 끝날 수는 없다.
우리는 매일 싸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이 전쟁의 목적이 서로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것임을.
우리는 다르지만 닮은 구석이 있고, 다투지만 사랑하는 모녀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딸도 자신의 아이를 보며 이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밖에서만 말이 없을 뿐 네 살배기 딸아이는 이제는 내 뒷목을 잡게 할 만큼 현란한 언어와 엄청난 깡다구로 내 마음에 스크래치 내지만 똘망똘망 야무진 그 모습이 귀여워 돌아서서 설핏 웃는 나는, 어쩔 수 없는 고슴도치 엄마니까.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닮음이 언젠가는 마음까지 이어지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극강의 인내심을 갖고 내 사랑 꿀먹은 과묵이와 시끄럽게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