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아미타불 모드 ON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완벽한 계획의 여왕이었다.
오전 10시 독서모임, 오후 3시반 글쓰기 모임, 저녁 7시 요가클래스…
마치 드라마 속 커리어우먼처럼 스케줄러를 보며 뿌듯해했다.
"오늘은 드디어 나만의 황금데이다!"
…라고 믿었던 그때의 나여, 안녕.
아이의 기침 소리에 경보음이 울렸다.
"띠링띠링! 엄마 모드 발동!
"모든 개인적 일정 즉시 폐기하라!"
아이 이마는 후끈, 내 마음은 철렁.
모처럼 일찍 귀가한 남편을 보고 속으로 안도했다.
"아, 오늘은 좀 도와주겠네…"
그런데 9시 땡 치자마자 외투를 챙긴다.
"어디 가?"
"친구가 잠깐 보자고…"
"지금? 애가 아픈데?"
"금방 올게!"
그리고는 슝!
마치 전염병 피하듯 초스피드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에 대고 "야이 나아아아쁜 인간아!" 외치고 싶었지만,
아이 울음소리에 내 분노는 그대로 삼켜졌다.
예상대로 아이는 등원 불가.
병원 대기실에서 다른 엄마들과 눈이 마주쳤다.
다들 똑같이 초췌한 얼굴.
순간, 묘한 동지애가 피어올랐다.
의사 선생님의 "단순 감기예요" 한마디에
안도 + 허탈 + 허무가 동시에 밀려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픈 아이보다
못 간 모임이 오늘은 더 속상했다.
그런 내가 못마땅해서 "이기적인 엄마네" 자책하다가,
곧장 "아니 근데 왜 꼭 내 계획 때만 애가 아픈 거야?"
죄책감과 분노가 동시에 나를 턱! 하고 잡아당겼다.
늘 똑같다.
계획 세우기 → 설레기 → 아이 아프기 → 계획 파토 → 죄책감 → 다시 계획 세우기.
그야말로 시지프스의 바위 굴리기.
도로아미타불, 도로아미타불, 또 도로아미타불.
원래 ‘나무아미타불’은 부처님의 자비를 기리는 불교 염불인데, 우리 일상에서는 변형되어
“헛수고였다, 수포로 돌아갔다”라는 뜻으로 많이 쓴다.
“도로(徒勞)”는 헛되다는 뜻, “아미타불”은 부처님 호칭.
합치면 ‘아무리 애써도 결국 헛수고, 부처님 이름만 부르게 된다’ 정도다.
그러니 내가 아이 아픈 날마다 중얼거린 “도로아미타불…”은 사실 불교적 깨달음이라기보다,
엄마 인생의 허무 개그 버전인 셈이다.
그래도 아이의 "엄마, 이제 괜찮아졌어요!" 하는 미소 한 방에
내 속앓이는 다 녹아내렸다.
독서모임? 다음 주도 있고.
책? 안 달아난다.
글쓰기? 결국 다시 돌아올 거다.
엄마 인생은 늘 변동성 100%.
그게 바로 스릴 넘치는 묘미(?) 아닐까.
내일은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울 거다. 설령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도 괜찮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엄마의 하루는 언제나 다시 시작이니까.
P.S. 남편아, 다음번엔 제발 사라지지 마라.
진짜로. 아니면 다음에는 내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