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던 날, 네 살짜리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립스틱 발라!”
거울 앞에 멈춰 선 나는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핏기 없는 얼굴, 중력에 굴복한 팔자주름, 울퉁불퉁한 뱃살.
임신 전 입던 옷들은 이제 현실과 맞지 않았고, 거울은 그 사실을 잔인할 만큼 솔직하게 보여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한동안 나 자신을 외면하며 살고 있었다.
늘 출산과 육아를 핑계로 삼았지만, 사실은 귀찮고 두려워서였다.
다이어트도 해봤다. 운동에 매달려보기도 하고, 방울토마토 몇 알로 하루를 버텨본 적도 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요요와 우울, 그리고 탈모.
잠깐 줄어든 건 몸무게였을지 몰라도, 돌아오지 않은 건 자신감과 자존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빨리빨리” 대신 “천천히, 느리게.”
“날씬해야 돼” 대신 “건강하면 돼.”
내 몸을 미워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보살피고 예뻐해주기로 했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아이의 말대로 립스틱 하나 바르고 외출하는 것.
예전 같으면 모자 하나 눌러쓰고 대충 나섰겠지만, 요즘은 다르다.
썬크림을 바르고, 립스틱을 쓱 그어본다.
신기하게도 그 작은 변화가 내 표정을 바꿔놓았다.
사실 나는 한동안 웃지 않았다.
거울 속 내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립스틱을 바르는 순간,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그때 딸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엄마, 예뻐!”
그 말 한마디가 마치 마법 같았다. 마치 응원처럼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잊고 있던 내 표정이 돌아왔고, 그 미소가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며칠 후, 동네 슈퍼에서 만난 이웃이 내게 물었다.
“좋은 일 있으세요? 요즘 얼굴이 밝아 보여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립스틱 하나 발랐을 뿐이에요.”
그러나 그 ‘립스틱 하나’에는 사실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지친 몸과 마음 대신, 천천히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다짐.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아이 앞에서 환하게 웃어주고 싶다는 소망까지.
나는 더 이상 날씬함에 집착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날씬과는 인연이 깊지 않았다.
대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딸아이의 딸, 손녀까지 품어줄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외출하는 일.
그건 단순한 화장이 아니다.
나 자신을 응원하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