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짹각, 짹각”
시계가 밤 11시 30분을 가리킨다.
또래 아이들이 벌써 2시간 전에 꿈나라로 떠난 시간, 우리 집 4살 딸아이는 아직 멀었다.
“나는 안 잠자고 싶어. 민주 안 졸려."
아이의 맑은 목소리에 담긴 여유로움과 달리, 나는 이미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13개월부터 시작된 이 올빼미 생활은 벌써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처음엔 '곧 바뀌겠지'라고 생각했다. 육아서를 뒤적이며 수면 패턴을 바꾸는 방법들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마치 자신만의 생체시계를 가진 것처럼, 변함없이 밤 12시가 되어서야 잠든다.
친정엄마는 “누구 딸아니랄까봐, 너도 당해봐라, 엄청 꼬시네.”라며 웃으시지만, 나에게는 전혀 웃을 일이 아니다.
42세에 낳은 늦둥이 딸. 바라고 바라던 소중한 아이였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저질 체력에 나이까지 많은 엄마가 무한 체력의 아이를 따라가기란 정말 쉽지 않다.
하루 종일 "엄마 이거 해줘", "엄마 저거 가져다줘"를 외치며 집 안을 종횡무진 누비는 아이를 쫓아다니다 보면, 저녁이 되면 이미 탈진 상태가 된다.
오늘도 남편의 야근 메시지가 온다.
예전엔 안쓰러웠는데 이제는 야근이 잦은 남편이 외려 부럽다.
적어도 그는 회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않는가.
가끔 아이가 미울 때도 있다. 이런 감정을 가지는 나 자신이 나쁜 엄마인 것 같아 자책하지만, 솔직한 마음이다.
특히 밤늦게까지 말똥말똥하게 놀자고 조르는 아이를 보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제발 좀 자라'는 마음의 외침이 목구멍까지 올라 온다.
나의 소박한 꿈은 단 하나다. 아이가 밤 10시에 자고, 나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 소설책을 읽는 것.
그저 그것뿐이다. 가끔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 남편과 함께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 딸은 극강의 체력으로 무장한 채 밤을 보내며 나의 그런 소망들을 산산조각 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힘겨운 육아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예전에는 길에서 아이와 엄마를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아기에게 시선이 갔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기 엄마를 먼저 본다.
그 엄마의 지친 표정, 흐트러진 머리, 서둘러 나온 듯한 옷차림에서 나와 같은 고단함을 읽어낸다.
육아의 무게를 아니까, 그 엄마들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육아를 하면서 나는 어머니라는 존재,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엄마들이 각자의 올빼미 아기를 키우며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그 전쟁 속에서도 묵묵히 아이를 사랑하고 키워내는 여성들의 숭고함을 깨달았다.
가끔 기적처럼 아이가 일찍 잠드는 날이 있다.
그날 느끼는 소소한 해방감이란! 갑자기 생긴 자유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몰라 어쩔 줄 모르다가, 결국 아이 잠든 모습을 보러 가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이것이 엄마라는 이름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올빼미 아기와 함께하는 밤은 분명 고되다.
하지만 이 시간들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이 밤들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 모든 순간들이 나를 더 강하고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