꿔다놓은 보릿자루와 영재 사이

by 연목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참으로 순수했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만 있으면 돼!" 하며 건강한 아이만 바랐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때만 해도 다른 엄마들이 왜 그리 영재, 영재 하며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나도 어느새 '그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 그 자체라는 것이다. 낯가림이 유독 심한 우리 아이는 키즈노트 사진에서 좀체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아이들이 신나게 손을 들고 발표하고 웃고 떠들 때, 우리 아이는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거나 아예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오후 3~4시쯤 키즈노트 알림이 뜨면 설레는 마음으로 확인하지만, 우리 아이 독사진은 고사하고 뒷모습이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남편이 꽤 똑똑한 편이라 은근히 기대했다. '아빠 닮아서 영리하겠지?'라는 헛된 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끔 어린이집에서 따로 연락이 오면 '우리 아이가 특별히 잘하는 게 있다'는 소식이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어머님, 민주는 참 밝아요. 대근육, 소근육, 언어, 인지발달 모두 골고루 잘 성장하고 있어요."

선생님의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살짝 실망했다. '골고루'라는 말이 이렇게 밋밋하게 들릴 줄이야! '남다르게 뛰어나다', '특별히 잘한다'는 말을 기대했던 내 마음이 한심스러웠다. 아이가 내 자랑거리, 내 장식품이라도 되는 양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이가 간파했나 보다. 그날 저녁, 아이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오늘은 기분이 좋아? 오늘은 화 안 났어?"

깜짝 놀랐다. 4살 아이의 눈에도 보였던 것이다. 피곤하고 실망스러운 내 표정이, 아이를 향한 나의 욕심이. 그 순간 깨달았다. 엄마의 감정을 이렇게 세심하게 읽어내는 아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바로 내 아이였다.


키즈노트에 잘 안 나오는 것도, 다른 아이들처럼 나서지 않는 것도 이제는 우리 아이만의 특별함으로 보인다. 조용히 관찰하고, 신중하게 행동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내 딸아이 민주.


물론 가끔은 여전히 욕심이 난다. 다른 엄마들이 "우리 아이가 벌써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라고 자랑할 때면 살짝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조용하지만 깊이 있고, 느리지만 확실하며, 눈에 띄지 않지만 따뜻한 그런 매력 말이다.


그래, 우리 아이는 끝끝내 영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꿔다놓은 보릿자루다. 그 보릿자루 자체가 금은보화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하고 소중하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일이라더니, 정말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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