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수저 프로젝트의 시작
솔직히 말해요. 우리집은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닙니다.
금수저란 태어날 때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적 걱정 없는 아이들을 뜻하고,
은수저는 그보다 조금 덜하지만 여전히 넉넉한 환경을 가진 경우를 말하잖아요.
남편도, 저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그래, 아이에게 최소한 책수저는 물려주자!
책수저는 돈이나 환경은 부족해도,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과 마음만큼은 꼭 물려주고 싶다는 제 바람을 담은 말이었어요.
책만큼 값싸고 고급스러운 수저도 없으니까요.
그날부터 저는 도서관 전사로 변신했습니다.
땀 뻘뻘 흘리며 책을 한 아름 안아오고,
사서 선생님께 정성껏 추천받은 책보따리를 풀어놓을 때의 그 뿌듯함!
아이 앞에 보물상자를 풀어놓는 기분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언제부턴가 제가 좀 이상해지고 있었어요.
책 고르기부터 읽는 방법까지, 죄다 제가 통제하고 있더라고요.
“엄마, 나 이 책 싫어.”
“좋은 책이야! 보면 다 좋아. 왜 싫다고만 해?”
남편이 한마디 툭 던집니다.
“욕심 좀 그만 부려. 아이가 싫다잖아.”
그 순간 억울했습니다.
비싼 사교육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좋은 책 보여준다는데 뭐가 문제냐고요.
하지만 정작 아이는 책이 아니라 제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힐끔힐끔 제 표정을 살피고,
제가 좋아할 만한 대목이 나오면 괜히 좋아하는 척 하고,
심지어 어느 날은 제가 가져온 책을 펼쳐놓고
그 안에 다른 책을 몰래 숨겨 읽더라고요!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구나…’
웃픈 건, 제가 도서관에서 독서토론 리더로 활동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부모들 앞에서는 “아이마다 속도가 있어요.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하면서,
정작 제 아이에게만큼은 ‘속도 위반 단속관’처럼 굴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 문득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친구 집에 가서 전집 가득 꽂힌 책장을 부러워하던 제 모습이요.
그때 저는 책보다 반짝이는 표지와
‘우리 집은 이런 집이다’라는 분위기에 끌렸던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의 저도 같았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물려주려는 게 아니라,
‘책 많이 읽히는 엄마’라는 훈장을 달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주려던 건 책이 아니라, 욕심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걸요.
진짜 책수저란, 아이가 스스로 책장을 넘기고 싶어 하는 마음.
다음 장을 궁금해하는 설렘.
책 속 세상을 자기 눈으로 발견하는 기쁨.
그것 말고는 없더라고요.
책수저의 시작은
엄마의 조급함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속도로 흘려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일테니까요.
금수저는 못 물려줘도, 책수저만큼은 꼭 물려주고 싶습니다.
다만 이번엔 제 방식이 아닌, 아이만의 방식으로요.
결국 책수저란, 엄마가 쥐여주는 숟가락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들고 “한 숟갈 더!” 하고 외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