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놀이터 가자!"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아이의 외침.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억지춘향으로 놀이터에 발을 들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놀이터는 단순히 아이들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엄마들의 또 다른 사회, 그야말로 '엄마 사교계'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처음엔 어색한 눈인사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벤치에 둘러앉아 수다꽃을 피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 이야기에서 시작해 남편 불만, 아직 생기지도 않은 둘째 계획까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40대 늦깎이 엄마인 나와 달리, 다른 엄마들은 대부분 30대 초중반의 젊은 엄마들이었다.
처음엔 나이 차이가 부담스러웠지만, 육아의 세계에서는 아이 순서가 더 중요했다.
첫째 엄마끼리는 서로 공감하며 위로받고, 둘째 엄마의 여유로운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를 뛰어넘어 형성된 이 평등한 관계가 신선하고 좋았다.
하지만 달콤한 시간도 잠시, 놀이터에도 부작용이 있었다.
겉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묘한 경쟁과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oo는 벌써 한글을 읽어요.", "주말에는 영어 놀이학교에 다녀요.", "피아노 학원도 알아보고 있어요."
아이들의 간식부터 주말 나들이 코스, 학습 계획까지 모든 것이 은근한 자랑과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어린이집 선생님 이야기며, 생활습관 교육법까지. 놀이터는 정보 교환의 장이자 동시에 경쟁의 무대였다.
아이들 세상도 복잡했다.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아이가 있으면 뒤따라가는 아이도 있고, 장난감을 뺏는 아이가 있으면 순순히 뺏기는 아이도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일상인 아이들의 세계에서, 후자에 해당하는 아이의 엄마는 속이 새까맣게 탄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 괜찮다" 연발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내 아이가 맞고 오는 날엔 정말 눈이 뒤집혔다.
그래도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꾹꾹 참아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다.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가 우리 아이를 물었다.
빨갛게 부어오른 자국이 선명했고, 한눈에 봐도 아픈 게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그 아이 엄마가 더 당황하며 연신 사과했다.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요? 어쩌죠?"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 엄마를 보니, 화가 났던 마음이 오히려 수그러들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아이를 더 꽉 안아주었다. 속이 상했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른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그 어린이집을 떠났다.
시설도 좋고 프로그램도 훌륭했지만, 아이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욕심으로 아이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들과의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사회성'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엄마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놀이터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진짜 사회성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보다 느려도, 소극적이어도, 때로는 뺏기기만 해도 괜찮다.
내 아이는 내 아이만의 속도와 방식이 있으니까.
놀이터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나는 비로소 경쟁과 비교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내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놀이터에서의 그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억지춘향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가장 값진 깨달음을 얻은 시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