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게 도서관

by 연목

육아 이전의 나에게 도서관이란, 그저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대여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끔 시험 기간이 되면 "아, 집중이 안 되네" 하며 무거운 엉덩이를 끌고 가서 열람실 한 귀퉁이에 앉아 벼락치기를 하던 곳. 신간 코너에서 "이런 것도 나오네?" 하며 눈요기나 하던 곳.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출산 전의 나는 꽤나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소위 '자기 잘난 멋에 사는' 전형적인 워커홀릭. 주당 40~50시간 이상의 수업을 하면서도 "이 정도야 뭐~" 하며 어깨를 으쓱하던 사람. 학생들의 관심과 좋은 강의평가를 받으면 은근히 뿌듯해하며 "역시 내가 좀 괜찮은 강사지?" 하고 스스로를 치켜세우던,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재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시간이 물처럼 넘쳐났고, 나는 그 시간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육아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내 인생을 휩쓸고 지나간 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그런 내가 지금은 육아 후 남는 시간에 도서관을 간다. 정말 '獨하고 毒하게'다. 독서토론, 작가초청 강연, 글쓰기 수업... 도서관은 참으로 행사가 많다. 마치 문화센터의 진화된 버전 같다. 그리고 다녀오면 내가 뭔가 해낸 것처럼, 뿌듯하게 시간을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보람을 느낀다. 2시간짜리 강연 하나가 예전의 하루 종일 내가 했던 수업보다 더 값지게 느껴진다.


남편은 처음에 무척 못마땅해했다. "또 도서관이야?" 하며 눈을 흘겼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놓고 뻐꾸기엄마처럼, 선녀처럼 훨훨 도서관으로 날아갔다. 집을 나서는 순간 어깨가 절로 들썩거렸다.


나중에 남편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서관에 갈 때 내 모습이 너무 설레고 신나 보였기 때문이란다. 마치 소풍 가는 초등학생처럼 말이다. 아이 낳고 처음으로 무언가를 진하게 요구하는 것이 처음이었다고. 얼마나 간절하게 마음을 먹고 도서관에 가는 발걸음인지 알기 때문에 말릴 수가 없었단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마법에 걸린다. '누구의 엄마'라는 꼬리표를 현관에 벗어두고, '누구의 아내'라는 역할도 신발과 함께 벗어둔다. 그리고 온전한 '나'가 된다. 책장 사이를 거닐며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강연장에서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글쓰기 수업에서 펜을 들고 내 마음속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요즘 아이가 "엄마는 도서관만 좋아해"라고 삐죽거린다. 맞다, 나는 도서관이 좋다. 아니, 사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언젠가 내가 쓴 글이 이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을 그날을 상상하며. 누군가가 내 책을 빌려가며 "이 작가 참 독하네"라고 말할 그날을 꿈꾸며.


여기서 나는 살아갈 힘과 육아라는 마라톤을 뛸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독하게 도서관으로 향한다. 발걸음은 가볍지만 마음은 독하게, 꿈은 크게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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