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자, 내게 황금보다 귀한 자유 시간이 생겼다.
매일 붙잡히던 작은 손이 떨어져 나가자,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가 낯설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잠시의 고민 끝에 나는 집 앞 문화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가야금을 배우기로 했다.
처음엔 그저 여유로운 취미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었다. 나는 서둘러 당근마켓에서 10만 원짜리 가야금을 들여놓고, ‘면목동 우륵’이 되겠다 다짐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줄은 모두 엉망으로 조율돼 있었고, 박치에 음치인 나는 그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유튜브를 뒤져 악기를 맞춰주었고, 나는 다시 신나게 현을 뜯었다.
친정에 입문 소식을 알렸을 때, 돌아온 반응은 차가웠다.
“아이나 잘 키워라.”
“음악은 장난이 아니다. 예술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여동생의 말은 더 날카로웠다. 하지만 나는 정녕 굴하지 않았다. 두 달 내내 ‘아리랑’을 반복했고, ‘퐁당퐁당’, ‘떳다 떳다 비행기’, ‘오빠 생각’ 같은 동요를 연주하며 아이와 함께 소소한 행복을 나눴다. 네 살배기 딸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 손끝을 바라보다가, “엄마, 나도 분홍색 가야금 사줘!” 하고 외치기도 했다.
오랜만에 학생으로 돌아가 매주 선생님의 칭찬과 지적 사이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내가 얼마나 성취와 인정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새삼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화원 수업 시간이 바뀌면서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아쉬웠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곧 유튜브 속 선생님들 곁으로 옮겨갔다. 음이 틀려도, 악보를 제대로 보지 못해도, 개의치 않았다. 작은 모니터 앞에서 하루하루 현을 뜯으며 내 세계를 넓혀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남편은 마침내 학원을 권했다.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 싶었지만, 두 달이 넘도록 집안 가득 울려 퍼지는 미숙한 가야금 소리에 시달리자, 차라리 제대로 배우는 편이 낫다고 여긴 것이다. 남편의 권유와 지원 덕분에 나는 지금, 피아노 학원에서 나보다 훨씬 어린 스승에게 개인 레슨을 받고 있다. 호랑이 같은 기세의 스승 앞에서 나는 여전히 서툴지만, 영상을 찍어 복습하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물집이 맺힌 손끝을 바라본다. 서툴지만 진심을 담은 현의 울림이 내 일상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나는 오늘도 형편없는 연주를 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뜨겁다.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면목동의 우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