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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연 Sep 12. 2022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들_ 명절의 추억

어렸을 적 명절은 곧 대구 할머니 댁에 가는 날이었다. 아빠가 고속도로 정체가 제일 적은 시간대, 최단거리 등 매우 현실적인 고민하고 있을 때, 나와 동생은 어느 휴게소에서, 어떤 간식을, 몇 번 먹을지, 할머니 댁에선 무얼 하며 놀지 등 매우 철없는 고민을 하기 바빴다. 엄마는 할머니 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휴게소 간식 먹기를 말렸지만, 늘 수도권에만 머물던 우리에게 휴게소는 명절에 거쳐야 할 필수 코스 같았다. 왠지 모르게 더 꼬들하게 느껴지는 휴게소 라면, 맵고 달며 걸쭉한 떡볶이, 고소한 통감자, 갓 구운 오징어 다리, 그리고 차에서 먹을 달달한 호두과자까지.. 할머니 댁에 가는 길은 시작부터 소풍 같은 설렘이었다.

할머니네서 먹는건 다 맛있어..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는 본격적인 살크 업의 시작. 할머니들은 공복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분들이시다. 맛있는 것을 먹고 나서, 살짝 배에 공간이 생길 때쯤 또 다른 간식거리를 건네시고, 또 허기지려 하면 빈틈을 놓치지 않고 다음 밥상이 준비된다. 맛있는 것 옆에 또 맛있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짧게 보는 만큼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고, 사랑을 주고 싶은 당신들의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할머니 댁 근방은 도시 촌놈인 우리들에겐 쾌적한 놀이터 같았다. 운영하시던 식당의 앞마당에서 손님이 있건 없건 뛰놀고, 집 옆에 위치한 절을 숨바꼭질 장소로 활용하고, 아랫동네 시골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마치 그 학교 학생인 듯 정글짐에 오르고, 밭에 따라가 농작물 수확하는 것도 돕고, 오랜만에 보는 사촌오빠들과 땀 흘리며 게임하기 바빴었던 기억.


얼마전 문자를 처음 배운 할머니. 딱 한줄인데 뭔가 감동.


성인이 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런 명절의 기억이 흐릿해졌다. 나이가 들고 상황이 바뀌면서 당연한 순리겠지만 아주 조금은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 우리가 이렇게 명절을 추억하듯, 할머니도 당신만의 추억이 있으실 텐데. 그걸 어쩌면 우리가 조금씩 희미하게 만든 거니까… 별생각 없이 그냥 더 이런 기억이 더 흐릿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로나마 짧게 남겨본다. 할머니 보고 싶다. 내일 전화드리고 10월엔 꼭 찾아뵈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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