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의 『광휘의 속삭임』을 새벽 시간에 여러 사람이 같이 읽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8편을 읽었을 뿐인데 우리는 모두 시인에게 매혹당했습니다. 제목인 ‘광휘의 속삭임’처럼 이 시들은 빛의 속삭임들입니다. 빛은 순간입니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게 다가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빛이 있는 순간만은 찬란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매 순간은 심장을 지닌다고 해도 될까요. 순간마다 심장이 있다면 순간마다 살아 움직이고 숨 쉬고 빛나다가 스러집니다. 시인은 이 순간을 꽃봉오리라고 말합니다. 순간이 온전히 살아 있는 존재인 것이지요.
우리는 잊고 살았습니다. 아니 잊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순간이 절정임을, 그리하여 심지어는 석양과 하늘과 구름마저도 심장을 갖고 있음을. 구름이 심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구름이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구름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존재이므로, 한편으로 구름이 보는 이의 의식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순간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순간들과 일치하므로 구름 또한 심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제 빛깔을, 자신만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저라는 존재로 인하여 빛나는 순간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모든 존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가 무심히 놓치는 그것들을 시인은 불러내어 의식 속으로 길어 올립니다. 그가 길어 올린 것들이 우리에게 새삼 깨달음을 주고 알아차리도록 만듭니다. 그는 순간을 각기 다른 색깔로 각기 다른 의미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때로는 묘사되는 사물이 주인이고 때로는 사물을 바라보는 이가 주체입니다. 때로는 생명을 가진 것이 주체이고 때로는 그 주체가 바라보는 시선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나무를 통해 생명을 만나고 일생을 만나며 꿈을 듣습니다. 사실은 그 모든 시가 우리가 겪어왔을 법한 순간이고 지나왔을 듯한 사실이며 놓친 것이고 아쉬운 것들입니다. 우리는 늘 미진하며 불타오르고 어쩌면 놓쳤을 법한 것들을 바라보며 후회하거나 안타까워하니까요.
이 시집의 절정은 「꽃 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하는 시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방문객」입니다. 방문객은 한 사람의 삶에 담긴 순간들을 세어봤을 법한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함을 이야기하지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는 일은 다름 아닌 그가 겪어낸 모든 순간이며 동시에 부서졌거나 부서질 법한 마음이 오는 일, 어찌 그의 삶뿐일까요. 나 또한 부서진 적이 있고 부서질 법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책이듯 그도 책입니다. 한 권의 책이 되어 오는 그 사람의 삶을 더듬어 보는 일은 유일하게 바람이 할 수 있지만 나는 내 마음이 바람의 흉내를 내기를 바랍니다. 나의 마음이 그 순간들을 알아차린다면 어찌 환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공감하는 순간이지요..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위안을 얻습니다. 여기 나와 같은 이가 있구나. 하는 깨달음처럼 안심되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종교처럼 시도 위안을 줍니다. 때로는 생의 의미에 위안을, 교감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위안을, 영원히 깊어질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위안을 줍니다. 종교가 궁극적 의문에 대한 위안을 준다면 시는 인간 그 자체가 빚어내는 생각과 사건에 대한 위안을 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명상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떤 행위, 어떤 동작에서 쉼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는 훈련을 거쳐 그 행위의 심장에 도달하지요. 그 행위가 지닌 참된 본질에 도달합니다. 시 명상 또한 그러합니다. MBSR의 창시자인 카밧진이 MBSR에 내린 정의, 독특한 방식으로 -의도적, 비판단적, 현재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그 정의는 시 명상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시를 읽기 위해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고 선입견 없이 그 시를 읽어 내려가며 온전히 그 구절들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 모든 일은 어휘가 지닌 의미를 경험하게 하고 결과적으로는 주의력 향상을 가져옵니다. 어디 주의력 향상뿐일까요.
시 명상은 깨달음을 가져옵니다. 그 깨달음은 통찰, 혹은 지혜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MBSR의 목적이 깨달음인 것처럼.
그 일이 단숨에 되지는 않습니다. 여러 시간 반복이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