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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명상/아빔볼라 알라비

by 이강선

선택은 내 몫 / 아빔볼라 알라비


trans. by 이강선


인생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지만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내 선택이다.


가슴 아픈 기억을 뒤에 남길지

마음속에 담아두고 괴로워할지는

내 선택이다.


실수를 하고 나서 걱정할지

실수에서 배우고 나아갈지는

내 선택이다.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쓸지

그 말을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갈지는

내 선택이다.


내 감정을 숨기고 억눌러둘지

마음을 털어놓고 짐을 덜어낼지는

내 선택이다.


얻은 것을 즐길지

감사하지 않고 경멸할지는

내 선택이다.


때로 내 몫을 고를 수 없지만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항상 내 선택이다.


from Mindfultribe.com


인상적인 시입니다. 간결하고 직관적입니다.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그 일을 소리 내어 읊음으로써 다시금 돌이키게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선택을 합니다. 무엇을 먹을지, 혹은 언제 먹을지 하는 아주 개인적인 선택도 있지만 아픔을 털어놓을지 감출지 하는 관계적인 선택도 있지요. 이 일을 계속할지 그만둘지 하는 장래에 대한 선택도 있고 모임에 나갈지 나가지 않을지 하는 사회적인 선택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글을 그만 쓰고 산책하러 갈지 혹은 계속 쓸지 하는 기회 선택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일상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어제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동료라고 부르기는 민망한 것이 우리는 함께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교수님 밑에서 공부를 했으니 지도교수님이 같다고 말해야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다른 제자들도 있지만 오직 세 명이 만났습니다. 교수님도 빼놓았습니다. 여러 가지 사연이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간을 맞추기가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아예 시간 되는 사람끼리 만나자고 하고 아예 다른 이들에게는 연락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간 몇 번 만남이 무산되고 나니 지혜랄까 하는 것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만남은 즐거웠습니다. 아니 즐겁게 하려고 애썼고 그게 효과를 거둔 것이지요. 우선 우리가 만났던 곳은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어서 소리가 왕왕 울리는 듯했고 비록 상대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피곤해졌지요. 만나기로 한 곳이 교통이 편리한 곳이었으니까요. 사당역은 아주 번화한 곳입니다. 그곳에는 전철이 2호선, 4호선 두 개가 지나가고 있으며, 입구가 무려 14개나 됩니다. 제가 살던 때, 1970년대, 1980년 초와는 아주 다르지요.



제가 살던 때 사당동은 달동네였습니다. 사당 3동에서 상도여중까지 가려면 산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그 산은 동작동 국립묘지가 있는 곳이라 우리는 담을 따라 걷곤 했습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그 길 왼쪽이 달동네였지요. 루핑으로 지붕을 하고 시멘트로 지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진짜 달동네였습니다. 물론 그때도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사당동 시장은 붐볐고 오빠가 살던 집까지 가려면 그 역시 주택으로 빽빽한 주택가를 지나야 했으니까요.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가는 어리둥절해지기 십상입니다. 우리가 만났던 파스텔시티는 아마 사당역 부근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 아닐까요. 카페와 레스토랑이 층마다 들어선 곳, 그래서 아직도 여전히 엄청난 크기의 크리스마스트리와 번쩍이는 장식물들이 보는 이의 기분을 가볍게 유쾌하게 해 주니까요. 노이에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반짝반짝하더군요. 처음에 저는 그 반짝임이 소나무 바늘잎에 부서지는 햇볕인 줄 알았습니다. 후에야 누군가 작은 전구가 달린 줄을 감아놓았고 그것이 저 위까지 올라가 있으며 마치 햇살처럼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소음을 견디다 못한 우리는 그곳을 나오기로 했습니다. 일어나 나오면서 둘러보니 빈 좌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곱게 우아하게 차려입은 아주머니들 편하게 입은 젊은 여성들이 저마다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지요. 그들은 거기 있기를 선택했고 우리는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건물 뒤편.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지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고 없으면 산책한다고 생각하기로 하고서요. 산책을 해도 좋고 대화를 해도 좋다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몇 군데 아름답거나 예쁜 카페를 들어가 본 끝에 소박한, 그리고 붐비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을 때, 저는 그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도 교수님 이야기를요. 지난해 광주 산수 도서관에 "채식주의자"강의를 하러 갔을 때 아니하고 왔을 때 지도교수님이 어떻게 반응하셨는지를 공유하기로 했던 겁니다. 그런 이야기는 아무에게나 할 수 없습니다.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들은 같은 지도 교수님 밑에서 다년간 공부했고 그 이후 십여 년이 넘도록 우정을 나누어오는 사이였으니까요. 비록 서로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고 해도요. 그녀는 대번 제 말뜻을 이해했습니다.



놀라움과 서운함. 연세가 드셨다고 해도 지도 교수님은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습니다. 주변에서 만나 뵐 수 있는 분으로 존경할 수 있는 분. 금수저라 해도 학문이 그 시선을 넓혀 주어 저 같은 흙 수저 출신을 다독여주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단번에 깨달아버린 것이었지요. 교수님의 선택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옹호였을 겁니다. 제자에 대한 격려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옳아하고 우격다짐하신 거지요.



그리고 우리는 책과 영화와 음악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간 읽은 책들을, 그리고 다른 이는 영화와 음악을, 그림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의 깊이에 놀랐고 감탄했습니다. 일어설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니 제가 장례식장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일상 이야기로 그칠 수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말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책과 영화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적절한 선택을 했던 거지요. 그건 우리 일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도 했으니까요. 흐뭇함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그리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인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나의 선택입니다. 내 감정을 숨기고 억누를지 아니면 털어놓을지는 내 선택입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할지 불평할지는 내 선택입니다.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진정으로 내 선택입니다. 언제나.... 일상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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