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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by 이강선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와 그녀로부터, 그들로부터 생기가 전달되어 오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로부터 희망 혹은 설움, 고단함과 아픔 등이 번져와 서로를 위안하거나 그로 인한 소망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한편으로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세계를 만날 수도 있지요. 그렇기에 다가오는 인연을 맞아 수용하는 이는 한결 더 세계가 넓어질 수 있다고 말하나 봅니다. 게다가 시야의 폭이 넓어지니 한결 더 현명해질 수 있지요.



지난 한 달간 거의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가지 않으니 만나는 이도 없어 그러잖아도 가뜩이나 좁은 세계가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어제도 그러했습니다. 종일 집안에 머물렀지요. 카톡을 살펴보니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어제 제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살펴보니 전화가 세 통 와 있었습니다. 단체 만남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좋은 기운, 그들과 만나 나눌 수 있는 생기를 놓쳐버렸습니다. 조금 화가 나려고 했습니다만 돌이켜보니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하고자 했던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고 싶었던 일,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들여다볼 수 있었지요.



그건 정리하는 일입니다. 지난달 내내 계속해왔지만 집중해서 들여다보기 어려웠습니다. 일상의 일도 해야 하고 각기 다른 일거리에 신경을 나누어야 하고, 매번 닥치는 일을 해결해야 하니 하나만 해내기가 어려웠던 것이지요. 그건 글이었습니다. 글을 써놓기는 했는데 그걸 모아본 적이 없으니 글은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떠올랐던 아이디어는 금세 사라졌습니다. 아니 그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그대로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 글들을 모았습니다. 분량이 꽤 많았지요. 글을 모은다는 건 그냥 한 군데에 모아놓는 것이 아닙니다. 내용을 읽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주제에 따라 글의 종류를 분류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쉽게 하는 일일 테지만 제게는 참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떤 글들을 주로 써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루의 단상이 어떤 경향을 띠고 있구나 하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지요.



결과적으로 나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정리되지 않은, 어지러이 널려 있는 내면들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느낌이었지요. 정리를 거치지 않으면 발전이 일어나지 않겠구나 하고 깨달았지요. 남이 준 주제를 가지고 해내는 일은 어렵지만 쉽습니다.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해내면 되니까요. 하지만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정리한다는, 이 일이야말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어찌 되었건 나 자신의 일부에 어떤 표현을 주고 개념을 짓는 작업이기 때문이지요.



지금 나는 나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삶은 글로써 정리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추구해 왔는지 앞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인지 말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결국 정리란 나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타인과의 만남이 내 세계를 넓혀준다면 정리는 내 세계를 깊게 해 주고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작업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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