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자신에게 속하기를/ 존 오도나휴
trans. 이강선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갈망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당신이 속한 틀이 넉넉해 당신의 꿈을 담을 수 있기를.
매일 아침, 축복의 목소리가
당신 마음속에서 속삭이며 깨어나기를.
당신의 영혼과 삶이 조화를 이루기를.
당신 영혼의 성소가 결코 유령이 머무는 곳이 되지 않기를.
생의 중심에 깃든 영원한 갈망을 알기를.
당신이 자신을 바라볼 때,
그 시선이 다정함으로 가득하기를.
빛과 당신 사이에 결코 벽을 세우지 않기를.
당신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
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의 일부가 되어 자신을 돌보기를
우리는 누군가 나를 축복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사랑받는다는 느낌, 혹은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요. 그러나 받는다는 것은 내 마음에 꼭 드는 일은 아닙니다. 받는다는 것은 주는 이의 생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내가 온전히 기뻐하는 때는 내 마음에 꼭 드는 때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나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때로 나는 세상이 아주 작다고 느낍니다. 비록 이처럼 작은 나이지만 나를 담을 곳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도 느낍니다. 밥벌이니까 참고 일하는 것이고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참고 함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요?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바로 그런 때 일 겁니다. 누군가는 참지 못해 떠나고 누군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이 속한 그 틀 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경우가 일어나지만 떠남과 남음 두 가지로 정리되지요.
얼마 전에 제 아이가 그러했습니다. 자신의 길이라는 큰 틀은 유지했지만 회사에서는 떠나야 했지요.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 회사가 정책 실패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아이가 속한 조직은 조정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CEO들은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잘못된 결정 하나로 수많은 이들이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입니다. 물론 CEO에게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속한 곳은 내게 소속감을 줍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나는 나 외에는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거나 누구를 만나거나 나는 온전히 속할 수 없고 온전히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에게 소속하는 것이 가장 온전한 소속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를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입니다. 기독교인은 신에게서, 불자는 부처님에게서 축복을 바랍니다. 그 모든 신은 초월적인, 그 어느 인간보다 크다고 여겨지기에 축복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이 존재하는 곳은 나의 바깥이 아닙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신을 믿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신을 믿는 것이지요. 믿는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이 믿는다는 의미니까요.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내 마음 안에는 무수한 나가 있고 알려지지 않은 세계가 존재하니까요. 그곳은 영혼이 깃든 장소입니다. 그곳은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장소입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운 장소이지요.
그곳은 내 삶의 중심부이며 내가 왜 태어났는지 그 이유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언제건 어디서건 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내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지요. 내가 나를 성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곳은 황폐해지거나 거친 그대로 버려져 영혼이 없는 곳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아침마다 축복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할 곳은 바로 나의 안입니다. 그 안에 있는 나는 생을 살아내고 있는 나보다 훨씬 크고, 그 안에 있는 나는 빛으로 가득한 나입니다. 그러니 부디 당신이 자신을 바라볼 때/ 그 시선이 다정함으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빛과 당신 사이에 결코 벽을 세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의 일부가 되어 자신을 돌보기를 바랍니다.
시를 읽으며, 한줄 한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동안 소망이 뼛속까지 사무쳤습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기를.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소속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