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아무래도 살그머니 오는 것 같습니다. 입춘 무렵, 추위가 한창인 때, 처음 느껴지는 봄기운은 기척도 아주 조그맣고 아주 살짝 오기에 눈에 뜨이지도 않지요. 첫 봄기운은 아기들이 쓰는 가제 손수건 한 장처럼 섬세하고 부드럽습니다. 느껴지나 했더니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지요. 우수 무렵, 눈을 들면 회양목 가지에 햇살 한 줌이 내리는 것 같습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면 여전히 겨울의 두터운 초록인데 황금빛이 얹혀 있습니다. 아침이 빨라집니다. 아직 눈이 내리는데, 얼음이 남았는데 문득 바깥이 환해집니다.
봄이 오면 분교 마을의 아이는 언니를 생각합니다. 언니는 아마도 산 너머 너머 저 멀리로 시집을 갔거나 일하러 갔거나 혹은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간 모양입니다. 입춘, 2월의 저 봄바람을 화자는 언니가 가는 체로 쳐 보낸 바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느다란 체를 통과하듯 섬세하고 고요하게 스며들어옵니다.
분교 사택을 둘러싼 나무들에 노란 봄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겨울이 아끼고 아껴두었던 꽃들입니다. 끝까지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열어놓은 봄입니다. 머뭇거리던 봄이 서두르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먼 산에 아른아른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하늘에서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면 언니에 대한 그리움은 사무칩니다.
겨울바람을 맞아 빨갛게 얼었다가 텄던, 그래서 쓰리던 손등처럼 언니에 대한 그리움도 아픔입니다. 상처를 곱게 곱게 씻어주던 언니의 손길, 더 이상 볼 수 없는 언니에 대한 그리움이 상처가 터진 것처럼 솟아 올라옵니다. 아직도 화자의 마음은 작년 봄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그리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언니와 함께였던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분교 마을의 봄 / 윤한로
우리 분교 마을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가는 체로 쳐 보낸
고운 바람
사택 울타리엔
노란 봄
먼 산엔
붉은 봄
하늘엔
뻐꾹 봄
손등엔
쓰린 봄
내 마음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튼 손 씻어주던
아직도 작년 봄
삼월을 찾다가 이 시를 만났습니다. 동시입니다만 어느 시보다도 봄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가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 시작하는 것들에 대한 환희가 잘 어우러진, 삼월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