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명상/지하정원/조선경

by 이강선


돌나물이 돋았길래 들여다보느라 앉았더니 향이 코를 찌릅니다。옆에 있던 회양목들이 나 좀 봐라 하고 시선을 끄는 것이겠지요? 꽃도 나무도 나물도 그저 있는 그대로를 내보여줍니다. 그들 안에 있는 것들로 치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나일 수 있는 힘은 홀로 있을 때 나옵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나를 들여다보는 힘도 혼자일 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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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것은 결코 나만을 위한 힘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힘은 타인을 위한 것이고 세상을 위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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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은 고독이라고 하지요. 고독은 외로움과는 다릅니다. 고독이란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격리하는 상태를 말하지요. 세상과 떨어져서 홀로 있지만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상태가 고독입니다. 외로움이란 타인에게 의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타인으로부터 애정 혹은 다른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는 상태이기도 하지요. 고독은 창조적이지만 외로움은 그렇지 않습니다. 외로움은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홀로입니다. 고독을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회 활동은 내면의 광야에서 울부짖는 목소리를 잠재우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신비주의자 토마스 아 켐피스는 당신이 세상으로 나갈 때, 자신의 일부를 잃고 돌아온다고 말했습니다. 고독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외롭고 산만한 사회의 소음이 당신을 거짓된 소속감으로 유혹할 것이며, 공허하고 지치게 될 뿐입니다.



존 오도노휴는 고독의 힘을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고독을 마주할 때,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황량함의 감각이 점점 진정한 소속감으로 변화합니다. 이는 느리고 열린 전환 과정이지만, 당신 자신의 개성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당신의 삶 속에서 진정한 집을 찾는 끝없는 과제입니다. 이는 자기도취적인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마음의 집에서 편안히 쉬는 순간, 문과 창문이 세상을 향해 열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당신의 고독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게 되면, 다른 이들과의 관계는 진실되고 창조적이 됩니다. 더 이상 다른 이들이나 외부의 프로젝트로부터 은밀히 인정을 구걸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밤에 홀로 지하철역을 청소하는 남자, 모스 아저씨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 『지하정원』은 이 글과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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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아저씨는 밤에 홀로 지하철역을 청소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난 이후에야 집을 나섭니다. 오래된 지하철역은 한때 그 아름다움 덕분에 자랑거리였지만 이제는 낡아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닦고 난 그때만 다시 정갈해 보일 뿐입니다. 밤새워 지하철역을 청소한 모스 아저씨는 새벽녘에야 퇴근합니다. 어느 날 모스 아저씨는 막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퀴퀴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은 모스 아저씨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낮에 자야 밤에 일을 할 수 있는데 잠들지 못하고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윽고 일터로 나선 아저씨는 터널 속으로 들어갑니다. 비누를 풀어 터널 벽을 닦습니다. 이윽고 환기구를 발견합니다. 환기구라니요. 환기구란 저위 세상과 통하는 곳입니다. 살그머니 바람이 들어오고 달빛도 고요히 내려앉는 곳이지요. 그곳에 쌓여 있던 쓰레기를 치운 아저씨는 환기구의 빈 공간에 흙을 가져다 붓습니다. 집에 있던, 뒷산에서 주워온 나무를 가져다 심습니다.



날마다 아저씨는 터널 안으로 가서 나무를 살핍니다. 나무가 자랍니다. 아저씨는 흙을 더 가져다 돋우고 물을 부어줍니다. 나무는 자라 환기구 밖으로 잎사귀를 살짝 내밀었습니다. 지나가던 아이가 소리치지만 바쁜 엄마는 그냥 지나칩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이, 나무는 점점 자라고 푸른 잎과 그늘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그곳에 작은 쉼터를 만듭니다. 이제 머리칼과 수염이 희게 변한 아저씨는 여전히 지하에서 나무를 돌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곳에서 혼자 쉬고 있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읽은 이들은 처음에는 책임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일터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지요. 그리고는 그가 고독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저씨는 혼자였으니까요.


지하는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그 밑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위에 있는 것들만 해도 벅차니까요. 위에 있는 것들로 만족하면서 그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저 아래 있고 그저 내가 여기 살아있으니 굳이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도 하는 것이지요. 지하는 우리가 애써 들여다보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지하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몸은 보이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지만 내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나 자신이라 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지요. 때로 그것들은 쌓여 악취를 풍기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기에 악취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언젠가는 우리 자신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입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라면 언제건 용기를 내어 깊고 컴컴한 터널을 들여다보겠지요. 그리고 어디선가 환기구를 찾아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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