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편 소설 읽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때로 제 모임에 영어와 관련 깊은 분들이 참여하십니다。 오래도록 영미권 세계에 살았던 분、 혹은 배우자가 미국인인 분、혹은 관련 직종에 오래도록 종사하셨던 분들이지요。 이 분들로부터 살아온 과정을 듣는 일은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즐겁습니다。 그 나라에서 신뢰를 쌓아온 과정은 힘들고 어려워 외국살이가 얼마나 고된 것인지 새삼 깨닫지요。 그런가 하면 평생토록 무역 관련、 외국 회사들과 거래해온 분들도 참여하십니다。한편으로 배우자가 외국인이라 평생 영어를 해온 분들도 있지요。
이분들은 대화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사업과 일에도 지장이 없지요。 하지만 소설 읽기에 참여하고 나면 이구동성으로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문장이 어려워서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이 분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문장과 문장을 구성하는 맥락입니다。 맥락 속에서 문장을 읽어내는 일인 것이지요。
문학은 단순히 사실만 명시하지 않습니다。 좋은 소설은 묘사하는 소설이고 좋은 시는 묘사하는 시입니다。 그 묘사 뒤에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주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하숙집」(The Boarding House)를 읽었습니다。 문장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소 긴 문장이 있기는 했지만 그 문장들은 정보를 하나씩 더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의미단위로 끊어 읽으면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무니부인이 딸과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는 문장을 살펴봅니다。 이 문장은 6개의 정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① W hen the table was cleared (식탁이 치워지고), ②the broken bread collected (빵 부스러기가 모아지고), ③the sugar and butter safe under lock and key (설탕과 버터를 금고에 넣어 잠근 후, ④she began to reconstruct the interview (무니 부인은 대화를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⑤ which she had had the night before with Polly (전날 밤 폴리와 나누었던). 식탁을 치웠다는 것은 아침을 먹고 난 후 접시니 포크니 나이프니 하는 것들을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식탁에 흘린 빵 부스러기를 모으고(후에 빵 푸딩을 만드는 데 사용하려고)설탕과 버터를 금고에 넣어 열쇠로 잠그고(하숙집이니까 안전하게 넣어두어야지요)난 이후 비로소 딸아이와 지난 밤 나누었던 대화를 돌이켜보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식탁을 치우고 빵부스러기를 모으고 설탕과 버터를 금고에 넣은 사람은 무니 부인이 아닌 하녀입니다。 즉 이 문장은 무니 부인이 아침 식사후 딸과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기 전에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정확히는 하녀가 하는 것을 지켜본 것입니다。
정보가 하나씩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 정보를 따라가면 해석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정보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저 아침 먹고 전날 밤 폴리와 나눈 대화를 돌이켜 보았다라고 하면 되는 것을 왜 이렇게 길게 썼을까요。 독자는 문장을 따라가면서 시간을 갖습니다。정리되고 긁어모으고 금고에 넣어 잠그고 하는 문장을 따라가면서 잡념들이 정리되고 있다는 눈치를 채게 됩니다。즉 독자는 무니 부인이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할 것이라고 예감하게 됩니다。이처럼 저자는 단순한 사실 묘사를 하는 듯 하지만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심상찮은 음악이 점점 고조되면서 위기를 예고하는 것처럼 소설도 정보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갑니다。 이러한 낌새를 알아차리면、분위기를 느끼면 한결 생동감이 살아납니다。 무니 부인이 푸줏간집 딸이었다는 설정만 해도 그러합니다。술주정뱅이로 전락한 남편과의 관계도 단칼에 잘라냈다는 대목이 이해가 가는 것이지요。
일상에서는 설령 이러한 일이 있다고 해도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알아차린다고 해도 이미 일어나고 있거나 늦어버리지요。 상대를 읽기란 힘드니까요。 우리들은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기도 버겁습니다。 매일을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지니까요。 문학은 다릅니다。 실제에서 일어날 듯한 허구, 개연성 있는 허구가 시대와 인간성을 반영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 살던 그 시대가 그 장소가 이러한 인간 군상이 존재하는 맥락이 됩니다。시대에 따른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편으로는 특정 시대、 특정 장소가 아닌 인류 전체의 모습이라는 보편성이기도 합니다。 한강의 작품이 왜 노벨상을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시대정신 반영이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이 나라、 이 시대에만 존재한다고 여겨진 특이성이 더 크게 보면 인류사를 통과하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문학이 통찰력을 키워줄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면모를 갖고 있기때문입니다。 허구를 통해 인간성을 들여다보는 것、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그저 묘사를 할뿐이라고 하지만 그 묘사 뒤에 있는 의미를 읽어내는 사람은 독자이기 때문에 리터러시가 발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