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위안부, 강제징용, 독도.
이미 위안부 왜곡 논란 취재로 램지어 교수와 지옥의 악수를 나눈 나는 하반기를 좀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1년간 미뤄졌던 도쿄 올림픽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 참고로 나는 올림픽을 매우 좋아한다. 더구나 시차 없는 경기라니. 이 정도면 내가 경기 뛰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다.
그런데 또 심기를 건드는 자들이 나온다. 대한민국 선수단 숙소 앞에서 욱일기를 들고 항의하는 극우단체들이다. 이들은 당시 숙소에 걸려있던 문구를 걸고넘어졌다. 이순신 장군이 했던 말을 인용한 문구였다.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
이순신 트라우마가 아직 남았는지 일본 극우단체와 일부 정치권은 반발했고, 우린 IOC로부터 욱일기 반입이 금지 조항이라는 확답을 받고 나서 해당 걸개를 철거했다. 나름 하나 주고 하나 받은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웬걸, 일본 정부는 IOC로부터 직접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면서 욱일기 반입에 대한 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 심지어 올림픽조직위 홈페이지에 그려진 성화봉송 코스 지도에 독도가 표시돼 있는 게 아니겠는가.
애초 조직위 측은 독도가 명확히 보이는 지도를 가져다 썼다가 서경덕 교수에게 ‘딱’ 걸렸다. 이후 문제가 공론화되자 부담을 느낀 듯 지도를 교체했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기존 독도가 있던 자리가 약간 음영처리만 된 게 아닌가. 일반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독도. 나는 그 지도 이미지의 노출과 대비 등등을 조절해봤다.
역시나 역시였다. 조직위는 독도를 지운 게 아니라 아주 연하게, 잘 보이지 않게 처리한 거였다. 이 정도면 노력이 가상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나 싶기도 하다.
처음부터 일본 정부에게 시정을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으니. 대신 IOC 대변인실에 입장을 물었다. 정말 기상천외한 답이 돌아왔다.
“성화 봉송 지도에 그려진 섬들은…올림픽 조직위 입장을 참고하세요.”
그들이 독도 문제를 모를 리 없다. 독도를 저렇게 ‘섬들’ 중 하나로 뭉뚱그린 것부터가 의도적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조직위 입장을 참고하라니. 참고로 IOC가 참고하라는 조직위 입장은 이렇다.
“독도 표기는 순수한 지형학적 표현이며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
일본이야 당연히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고 있으니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밝힌 것. 심지어 불과 며칠 전 일본 정부는 방위백서를 통해 독도를 ‘고유 영토 다케시마’로 규정한 상황이었다.
이 말을 종합하면 일본은 ‘독도는 우리의 고유 영토’이니 당연히 ‘정치적인 의도가 없다’고 말하고, IOC는 그런 ‘일본 입장을 참고’하라는 것.
게다가 당시는 또 다른 지도에 크림반도가 러시아 영토로 명기된 것을 두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항의하던 때였는데, IOC는 항의를 듣자마자 지도를 고쳤다. 심지어 나에게도 이 부분을 언급했다.
“크림반도 건은 우리가 잘못한 것이다. 즉각 수정했고 사과한다.”
아니 이걸 왜 나한테 사과하나. 황당 그 자체였다.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에 대해선 IOC 스스로 정치적인 판단을 내렸지만, 독도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
욱일기 반입 문제도 마찬가지. 경기 중 발생 사례는 사후 판단에 맡긴다는 입장이었다. 예방은 없었다. 피해가 발생해야 출동한다는 IOC에 더 물어볼 것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니 그전에, 이걸 우리 탓으로 생각해야 하나? 잘못을 저지른 놈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가 고통을 받아야 하나? 이 고통은 언제까지 이어지려나?
지구가 언제 멸망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때까지도 해결되지 않을지 모른다.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을 바라보며 ‘그래도 우리땅’을 외치고 있을지도. 정말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싶다가도, 행여 잘못된 결과를 받아 들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분쟁에서 질 것 같다는 게 아니다. ICJ 회부 자체가 사실상 독도 소유권을 놓고 하나의 선에서 새로 출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 그렇다. 세상은 매번 정상적으로만 돌아가진 않는다. 더욱이 국제법, 국제정치, 국제관계, 외교는 그렇다. 변수가 많고 로비 또는 후원이 가능하다.
MB 정부 시절 일본은 독도 문제를 ICJ에 회부하자고 제안한 적 있다. 그때 우린 거절했다. 일본의 자신감이었을지 허풍이었을지. 앞으로도 이에 대한 고민은 계속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