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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승빈 Jan 03. 2021

그 선배

1월 3일, 세 번째.

군 전역을 하고 정확하게 이틀이 지난날, 대학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 선배는 착실했던 데다 학업이나 인성면에서도 아주 올바른 사람이어서 나는 곧잘 그를 따랐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대일을 기억해주고 전화까지 해줬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했다. 역시 평소에 됨됨이가 좋은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여전하구나라며 작은 감동까지 받았다. 


 " 이제 군대도 다녀왔는데 언제까지 집에 손 벌릴 거냐? 너도이제 스스로 벌어야지"


전역을 축하한다는 말과 그동안의 이야기는 앞으로 해야 할 일로 이어졌고, 자기네 회사에 마침 자리가 있으니 바로 출근하란다. 들어보니 급여도 나쁘지 않았고, 기숙사도 있어서 복학 전까지 잠깐 일하기엔 경력도 쌓고 괜찮을 것 같았지. 선배는 요즘 회사가 바쁘니 며칠 지낼 정도의 옷가지만 먼저 챙겨 오라며 재촉했다. 


함께 일을 할 날을 고대하며 준비를 하던 중에 전역일이 비슷했던 동기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들 모두 그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 정보력이 좋은 동기 하나가 그 선배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젠가부터 피라미드 업체에 빠져서 후배들 전역일을 귀신같이 알고 전화를 한다며, 전화를 받지 않은 애가 없다라며. 지금 그 선배 제정신이 아니니 조심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항상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후배들도 잘 챙겨주는 자상한 선배였는데, 무엇이 그를 그런 상황에 놓이게 했을까. 그 날 이후 그 선배와는 더 이상 어떤 연락도 주고받지 못했다. 가끔 TV 뉴스에서 다단계 업체 이야기가 나오면 지금도 제일 먼저 그 선배가 떠오른다. 지금은 잘 지내고 계시길.




하루 한 장의 드로잉, 하나의 단상.

1장 1단. 세 번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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