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도서관 근처에는 제법 넓은 카페들이 많다. 너무 멋내거나 과하게 꾸밈 없이 차분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데, 그 광경이 퍽 도서관과 어울린다. 대부분 그곳에서 책을 빌리고, 간혹 구할 수 없으면 행신도서관으로 발길을돌리는 편이다. 미리 예약을 하거나 대출 현황을 알아보고 가지 않는 이유는 여름 같은 내 성정에 있다. 두 곳이 가까워 보여도 행신1동, 행신2동, 행신3동, 행신4동, 화정1동, 화정2동, 즉 6군데의 동네를 지난다. 그래서 짧은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굳이 돌아가는 장면을 즐긴다. 생각해보면 나는 명백한 것들에 설렌 적이 드물다.
강원도 원주에서 반 년 살이를 했다. 시청 앞 카페에서 커피를 내렸는데, 재직증명서랄 게 없는 시급 아르바이트생이었다. 회원증을 발급 받지 않고 지내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단골 손님 분이 서류를 만들어 주셨다. 그 덕에 단구동에 있는 한 도서관에서 무수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내가 다시 일산으로 올라갈 때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는데, 기쁜 마음과 한편의 쓸쓸함으로 아직 다 읽지는 못 했다.
인생을 산다는 것 삶이 흐리게 빛나길 바라며 익숙한 문장들을 지워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낯선 이보다는 서툰 길을 만나고 싶다. 좋아하는 계절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얄팍한 만족에 자주 벅차는 사람으로, 어쩌면 사랑을 생활하는 자로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