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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다

by 이매송이

오이와 견과류 알러지가 있는 나에게 그녀는 오이 무침과 땅콩버터를 준다. 만난 지 1년이 되지 않은 사람도 아는 것을 그녀는 37년째 모르고 있다. 나는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난다. 그래서 락토프리를 마신다. 내가 10대였을 때 억지로 먹고, 아프고, 그러면 공부를 덜 하게 되고, 혼나고, 또 나만 유난이 된다. 학교에서 강제로 나눠 주는 그 흰 음료가 가방 안에서 터진 날이면, 내 종아리에는 가로로 긴 보랏빛 줄이 생겼다. 나는 그녀의 배에서 나왔으나, 그녀는 지우지 못한 일을 오랜 시간 후회 했다.

그는 어느 날 나름의 큰 돈을 보내 왔다. 언젠가는 사죄한다는 메세지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것’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내가 아직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아서다. 그의 손바닥은 크고 나의 뺨은 얇아서 자주 빨갛게 물들었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옷이 찢겨질 정도로 맞아도 그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더 패고 싶지만 작고 여린 나는 죽을 수도 있어서였다. 딸을 셋 가진 그는 술에 취해 싫은 자식이 있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의 사교성이 이성에게 주로 발현된다는 것을 그녀와 나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믿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예전의 그와 그녀는 서로를 향해 던지고 소리쳤으며, 그 발로는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허나 그녀는 늙었다고 하기엔 노의 그림자가 없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내가 먹고 마실 수 없는 음식들로 가득한 도시락통이 가끔 놓여 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치지 않으며, 절대로 쳐다 보지 않는다. 나는 그 반찬 때로는 과일 등을 버리는 일로 그녀에게 복수한다. 온기가 느껴지는 밥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펑펑 울었다. 접근 금지 신청은 알아 보았으면서 도어락을 바꾸지 않는 마음과 같다. 자취방 비밀번호는 나의 음력 생일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든 이메일의 비밀 번호, 그녀가 지어 준 것이다.

그는 확실히 지고 있다. 큰 수술의 후유증으로 눈이 가라 앉았다. 빽빽하던 검은 머리카락은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하얀 눈 같다. 나는 연락할 수 있으나, 그는 차단 당한 지 오래다. 내게 소식을 알리고 싶으면 제 3자가 있어야만 닿을 수 있다. 이제 번호를 바꾸고 알려 주지 않을 수도 있으며 저 멀리 도망칠 수도 있다. 첫번째 탈출은 강원도였지만, 지금은 영영 찾지 못할 곳으로 갈 수 있다. 어릴 적 나는 그의 모든 모습이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선가 그와 비슷한 뒷모습을 보면 다른 사람이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담배를 핀다.

내가 죽고 싶었던 이유는 새벽 세 시 편의점 불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죽고 싶었던 이유는 아침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고 싶었던 이유는 너무 약한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죽고 싶었던 이유는 그녀가 코스모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죽고 싶었던 이유는 그가 사경을 헤맬 때 가장 많이 울고 제일 크게 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의 복수는 언제나 실패 했다.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다. 용서도 언제나 실패했다. 그러나 복수와 용서는 같은 말이 아니다. 용서도 나의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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